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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n 08. 2022

영원할 수 없는 순간이 꼭 영원할 것 같다

반려 아들

  그날이 들이닥치기 전에 쓴 글은 바로 이 글이었다. 나의 일곱 살 난 둘째 아이가 코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영원할 수 없는 순간이구나.' 불현듯 깨달았다. 소중히 남기고 싶은 지금의 모습에 급히 컴퓨터를 켜고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바라보며 글을 썼다. 

  그날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우리의 삶은 고요했다. 평범하였지만 이렇게 간간히 감사함이 드리우는 삶,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별 탈없이 지내오던 축복받은 삶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둘째 아이는 아침잠이 많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늘 밤만 되면 안 자고 싶어 발악을 하며 늦게 잔다.  늦게 자서일까? 유독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이 녀석을 아침에 깨우는 순간은 하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다. 물론, 녀석이 깨면 나의 이런 마음도 함께 사라지며 현실 육아 속에 풍덩 빠진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으로 매일 아침, 이 시간을 기다린다.


첫째 아이를 등교시키고 방에 들어오면 둘째가 자기의 애착 베개를 가까이 댄 채 몸을 웅크려 정신없이 자고 있다.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에게서는 달콤한 아이 냄새와 꿈의 냄새가 난다. 무슨 꿈을 꾸는 것인지 속눈썹이 들썩들썩 움직이며 평온한 숨을 내쉰다. 고요한 공기 속에 아이가 내쉬는 숨소리만이 진동한다.


가만히 아이의 얼굴에 나의 볼을 갖다 댄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숨결 따라 움직이며 나의 볼을 간지럽힌다. 실크처럼 보드라운 볼에 뽀뽀를 해주고,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이제 아침이 되었네! 일어날 시간이야."


아이의 발바닥을 만져본다.

"어느새 발이 이토록이나 자랐네."

 자그마한 키와 달리 유독 발은 큰 일곱 살 아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손으로 꾹꾹 눌러 쭉쭉이를 해준다. 아이는 자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아이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톡톡 튕기고 앞뒤로 움직이며 장난을 친다.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꾹 꾹 눌러 키야 자라라~ 노래를 부르면, 웅크려 자던 아이는 기지개를 늘어지게 켠다. 그제야 눈을 살그머니 뜨고 나를 보며 행복하게 씩 웃어준다.


그렇게, 아이가 맞는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가 기지개를 켜고 웃어주는 그 미소가 좋다. 잠에서 깨어 처음 보는 엄마에게 웃어주는 진심이 황홀하다. 그로 인해, 어쩌면 나는 귀찮을 수도 있는 이 잠깨기 의식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가장 많이 닮은 녀석, 말하기 전에 눈물부터 튀어나오는 녀석, 말하지 않아도 먼저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녀석, 가만히 와서 뽀뽀해주고 가는 녀석,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외쳐주는 녀석, 엄마랑 결혼한다고 수줍게 웃는 녀석.

이 녀석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내가 받은 모든 것들은 단 하나도 진심이 아닌 것들이 없었다.


안다. 훗 날, 이 날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이를 품에 넣고 키울 몇 해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아이에게 쏟은 나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그것이 아이게 아름다운 정서로 마음 안 어딘가에 남아주기를 작게나마 바라본다.


아들과 함께 맞는 아침이 참으로 좋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아이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아이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 내 안에 작은 축복으로 쌓인다. 영원할 수 없는 순간이 꼭 영원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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