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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l 26. 2022

슬픈 행복

사랑을 담아내는 손

"수술이 너무나도 위험한 위치입니다. 바로 옆에 동맥이 흐르고, 바로 아래 신경다발이 있습니다."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터지려면 자다가도 터집니다. 그냥 즐겁게 일상을 사십시오.


눈을 뜨면 빌었다. 오진이기를 바랐다.

눈을 뜨면 빌었다. 아이가 괜찮기를 바랐다.

눈을 뜨면 빌었다. 내가 어떤 형식으로든 아이를 지킬 수 있기를 빌었다.

울며 주저앉았다.

"왜! 왜 우리 아이입니까."

"제가 대신 아프면 안 되겠습니까."

울부짖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겉보기에 똑같은 일상을 산다.

밥을 짓고, 먹이고, 치우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 짓는 똑같은 삶이지만 이제는 결코 이전과 같아질 수 없음을 안다.

밥을 짓되, 매일 같이 밥이라는 연료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밥을 짓되, 나의 손이 조금 더 쓰일 수 있기를, 사랑을 담아낼 수 있기를, 마음을 녹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밥을 짓고 차린다.


  함께 시간을 보내되 나의 시간이 사라짐을 더 이상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어차피 작은 욕망들은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존재한다. 쓰고 싶던 아주 작은 마음속 간절함이 어디서 오는지 적나라하게 보았다. 나를 살게 해 준, 나를 사랑해준 우리 아이들이 아니고서야 애초에 가능하지 못할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만의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온전히 의식하여 지금 현재를 잡는다. 아침에 베란다 창을 활짝 열 때, 베란다 사이로 삐져 나오는 나뭇잎의 상냥한 속삭임, 오후 햇살이 드리우는 거실의 그림자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이 시간이 그저 축복임을 이제는 안다.


매일 밤, 오늘 하루를 사랑하는데 쓸 수 있어 감사하다 기도하며 잠이 든다. 매일 아침 오늘을 오롯이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 기도하며 시작한다. 매일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아이들과 행복하게 나눌 오늘을 기대하고, 아이들과 가득 추억할 기억을 남기며 가장 소소하지만 가장 특별한 하루를 산다.


나의 슬픈 행복이 가득 넘쳐, 살 힘이 된다. 그렇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내 손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쓰이고 있다.

요리를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한다.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뜨거운 불을 써 튀기고 볶기도 하고, 칼에 베이기도 하고 화상을 입기도 한다. 방수 밴드를 붙인 채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챙긴다. 마디는 며칠 사이 더없이 굵어지고 그마저도 여름이라 칠하였던 네일마저도 전부 지워 자유롭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건강이 달렸고, 가족의 행복이 달린 이 상황에서 내 손 따위는 관심 밖이다.


나는 내 손 덕분에 하기 싫은 것들을 기꺼이 하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낀다.

내 손으로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내 손으로 한 치 앞을 모를 미래에서 아이를 두려움에서 보호할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도 내 손으로 우리 가족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나는 내 손이 감사하다.


오늘도 내 손은 일어나자마자 감사기도를 한 후, 아직 자고 있는 두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쌀을 씻고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 하루 나의 손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쓰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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