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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4. 2022

흰 염소들 사이의 얼룩이

염소 세계의 왕따


  나는 아이들과 함께 동물의 먹이를 줄 수 있는 농장, 염소 우리 앞에 서 있다. 하얀 염소들 사이에는 얼룩 염소 한 마리가 있다. 얼룩이 염소는 펜스에 얼굴을 디밀고 풀을 받아먹기 위해 뭉쳐있는 다른 염소들과는 달리 저만치 멀리에서 눈치를 본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설마, 저 녀석이 얼룩이라고 다른 녀석들이 따돌리는 걸까?'


  불편한 나의 심정을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전에, 멀뚱히 먼발치서 서 있던 얼룩 염소에게 하얀 염소 한 마리가 다가온다. 하얀 염소는 아무 이유 없이 머리를 디밀며 뿔로 얼룩 염소를 훅 밀친다.

  "엄마, 지금 봤어? 봤어?"

  "엄마, 쟤가 갑자기 얘를 확~이렇게 했어."

장면을 목격한 아이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하얀 염소가 어디선가 나타나 한번 더 구석에 몰린 얼룩이를 치고 간다.

  "불쌍해."

  "누나, 나는 이제부터 얼룩이한테만 먹이를 줄 거야."

  "나도!"


  아이들은 이제 얼룩이 편이 되었다. 그러나, 얼룩이는 하얀 염소들의 눈치를 보느라 펜스 가까이에 오지도 못하고 먹이를 받아먹지도 못한다. 머뭇거리다가 얼룩이가 펜스 가까이 오면 하얀 녀석들이 어느새 등장하여 가차 없이 머리로 밀쳐버린다.

대놓고 자신을 싫어하는 하얀 무리들 속에 있는 단 한 마리의 얼룩 염소. 그 얼룩 염소는 긴 속눈썹을 보이며 끔뻑 눈을 감았다 뜰뿐, 아무 소리가 없다.


  "하지 마!"

  얼룩 염소가 내지 못하는 소리는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로 대체되어 앙칼지게 퍼진다. 아이의 단호한 외침에도 하얀 염소들은 아랑곳 않고, 얼룩 염소는 그저 눈을 한번 감았다 뜰뿐이다. 먼발치로 밀려나는 얼룩 염소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얼룩 염소는 눈빛으로 애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눈빛은 '도와달라'는 말이었을까?


  두 아이들은 한 팀이 되었다. 첫째는 하얀 염소를 몰았다. 그 사이, 둘째가 저만치서 눈치 보여 다가오지 못하는 얼룩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있잖아. 아빠가 그랬잖아. 이렇게 태어난 것, 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괴롭히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나쁘댔어."

첫째가 말한다.

  "맞아."

둘째가 맞장구친다.

  "아빠가 우리는 절대 그러면 안 된댔어. 이걸 보니 정말 알겠네."

씩씩거리던 첫째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야! 너네! 얘 괴롭히지 마!"

첫째의 호된 꾸지람을 듣는지 마는지 하얀 염소들은 그저 먹이 몰이에 정신이 팔려있다. 결국, 둘째는 힘겹게 얼룩이에게 먹이를 주는 데 성공한다. 얼룩이의 입이 오물오물거리자, 두 아이들은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누나, 내가 먹였어. 드디어 쟤도 먹게 되었어."

  "응. 잘했어. "

  "근데, 누나, 다른 애들이 진짜 못됐다. 그렇지?"

  감성적인 일곱 살의 둘째는 이 말을 한 후 울상이 되었다. 곧 눈물이 흐를 듯한 얼굴을 하고는 안타까워한다. 논리적인 열 살의 첫째는 곧 말이 많아졌다. 동물들이 왕따를 시킬 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이냐, 저런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이냐, 이 농장의 주인에게 책임을 물어도 되느냐, 동물들은 학폭위원회가 없는 거냐, 말을 못 하다 뿐이지 자기들끼리 그래도 소통을 할 텐데, 그냥 이렇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거냐, 따져 묻느라 정신이 없다.


  쪼그라든 사람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은 눈치 보는 염소의 모습, 먹먹한 그 눈빛,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발걸음. 불쌍하다는 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 불편하고 복잡한 심정. 내게는 얼룩 염소가 그러했다. 그나마 인간은 말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양심이란 것을 가지고 살아 다행이니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는 동물 우리를 떠난다.


  아이들이 동물 우리 밖을 나올 무렵이 되자, 결국에는 학부모가 된 처지의 나는 이 말을 하고야 만다.

  "저렇게 한 친구만을 괴롭히는 것은 정말 비열한 일이야. 사람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아이들은 '맞아 맞아. 저러면 혼나야지. 우리는 안 그럴게.' 하며 쪼르르 달려 나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살면서 언젠가는 겪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어떻게든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애써 꾹꾹 누른다. 꾸욱 누른 마음만큼 나의 발자국이 흙 밭에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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