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용기가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아요.
1992년 초등학교 5학년, 나는 잠시 쉬었던 피아노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였다. 가정집 피아노 교습소에 두 번째로 가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피아노 학원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문이 닫혀 있으면 초인종을 눌러 누군가의 안내를 받았을 텐데, 문이 열려 있었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들어가도 될까?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문을 열어둔 것은 그냥 들어오라는 말이겠지?’
‘선생님은 방 안에서 레슨 중이신가? 왜 아무도 안 나오지?’
현관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요~", "선생님~", "누구 없어요?"
이 말이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올 용기가 없었다. 다리가 아파왔다. 방에서 딩동대는 피아노 선율과 선생님이 목소리가 번갈아 들린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하고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문턱 앞에 쪼그려 앉는다. ‘신을 벗고 들어가서 소파에서 기다려도 될까?’ 하는 마음은 역시나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행동으로 옮길 용기 한 끗이 없었다. 이도 저도 못한 채 쪼그려 앉은 다리가 아파 복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엉덩이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말 한마디를 못하다니! 새로울 일도 아니지만 이토록이나 소심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열두 살이나 먹어서 ‘저기요!’ 이 한 마디를 못해서 이게 무슨 꼴이람! 자격지심으로 마음이 점점 차오르던 차,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바닥의 한기가 기분이 나빠 일어난다. 드디어, ‘털컥!’ 하고 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휴. 살았다.’
"어머, 언제부터 여기 서 있던 거니? 그냥 들어오면 되는데!"
커다란 눈을 하고 놀란 선생님의 목소리 톤이 높다. 너무나 당연히 들어와야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게 뭐라고 문 앞에서 40분이란 시간을 들어오지 못한 것이 창피하다. 학생이 오기로 한 시간에 오지 않으면 한번 좀 내다보지 안에만 계신 선생님이 원망스럽다. 혹시나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나의 한심함에 속상하실 터, "좀 전에 왔어요."라고 변명을 한다. 복도에서 느껴졌던 엉덩이의 한기가 심장으로 파고든다.
“휴우.”
드디어, 운동화를 벗었다. 땀에 가득 젖은 양말이 바닥에 닿아 쩌억하는 소리를 낸다. 내가 쳐야 하는 피아노 방 앞에 가방을 턱 내려놓는다.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어진다.
30년 후인 2021년, 아홉 살 첫째에게 직업 체험을 시켜주고 싶어 ‘잡월드’라는 곳을 찾았다. 더 신이 난 것은 여섯 살 둘째였다. 자신이 그토록 되고 싶던 경찰관이 될 수 있고 동경하는 소방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온갖 상상의 시나리오를 펼치며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빠 도둑을 잡고 상상 속의 화재를 진압하며 곧 자신이 얼마나 멋지게 임무를 수행할지 두고 보라며 단단히 별렀다.
드디어 도착한 직업 체험관, 소방서와 경찰서를 본 둘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소방차가 돌아다니고 어린이 소방관들이 불을 끈다. 실제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넋을 놓고 구경한다. 그러나 둘째는 이내 체험관 안에는 엄마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나랑 같이 할래."
그저, 이 말만 반복할 뿐 혼자 체험을 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둘째는 자꾸만 작아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체험을 누나와 함께 들은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 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둘째는 단 한 개의 체험밖에 하지 못했다. 체험을 하나 끝내면 직업 카드를 받는다. 본인이 유일하게 받은 우주비행사 카드만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끝까지 고민한다. 간절히 만지고 만지면 없던 용기가 생기기라도 하는 것일까? 결국 그렇게 시간이 다 할 때까지 아무 체험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경찰관도 소방관도 해양구조대도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미련은 남지만 용기는 나지 않는다. 간절히 하고 싶었지만 그만큼의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 나의 마음 깊숙한 곳이 답답함과 화로 끓어올랐다. 지금이 아니어도 또 오면 되는 것인데 속에서는 오늘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조바심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좌절과 미움과 사랑이 뒤죽박죽 섞인 채 소리쳤다.
"왜 이런 것도 혼자 못하는 거야?"
"언제까지 엄마랑 누나가 같이 해야만 할 거야?"
잠잠했던 마음에 화산이 폭발했다. 화가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챘으면서도 손 쓸 사이 없이 폭발해버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한 채로 날카롭게 말을 쏟아냈다. 아이는 그런 나를 속절없이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용기가 여기까지 올라오지가 않아요."
“그럼,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나가서 아빠랑 매미를 잡을 거야?”
아이는 더 굵은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째와 신랑은 출구를 향했다. 둘의 뒷모습이 사라져 없어지자 그제야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소심한 사람이 온 마음을 끌어 내 용기 한 끗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이 사실이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희미해졌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며 만나는 내 안의 이중성과 마주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겪지 않아 모르는 일이어서 어려운 것을 다독여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어쩌면 쉬운 일인 걸까?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선뜻 용기를 내어 도전해 주길 바랬던 나의 마음은 욕심이었던 것일까?
눈물을 흘리며 출구로 향하는 둘째의 축 쳐진 뒷모습이 마음에 밟힌다. 기나긴 기다림과 야단을 간직한 채 둘째의 하루가 저물었다. 잠들기 직전, 둘째가 이야기했다.
"엄마, 우주비행사는 정말 재미있었어."
"엄마, 우주인들 변기는 구멍이 정말 작다? 똥이 둥둥 떠다닌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엄마, 우주인들은 서서 잠을 잔대. 안전벨트를 혼자 풀고 차고 해야 해서 손은 빼야 한대."
"엄마, 화성이 빨간색이잖아. 근데 춥대."
종알거리며 유일하게 하나 한 체험에 대해 꼼꼼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더니, 가장 마지막에 말했다.
"엄마, 내가 미안해. 자고 일어나면, 나한테 용기가 이만~~큼 생겼으면 좋겠어."
아이는 본인이 유일하게 한 우주비행사 체험 카드를 손 앞에 고이 잡은 채 잠이 들었다. 아이가 느꼈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엄마가 용기를 내가 위한 너의 간절함을 모른 척했구나. 용기 좀 못 냈다고 형편없는 아이 취급을 해서 미안해. 사실, 엄마는 너보다 더 심했었는데.. 엄마는 열두 살이나 되어서도 신발 벗고 "저기요" 외치지 못한 기억이 생생한데, 여섯 살짜리 너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힘들게 한 것 같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깨어있을 때 미쳐해주지 못한 말들을 아이가 잠든 후에서야 귓가에 해준다. 꿈속에서만큼은 우리 둘째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경찰관도 되어보고 소방관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꿈속에서는 비록 용기가 없더라도 마음껏 누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면서 필요한 용기들이 채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유독 더디고 긴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도 어디선가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두 손 가득 꼭 쥐고 있던 우주비행사 직업 카드를 살그머니 빼어 머리맡에 올려준다. 땀으로 꼬깃해진 직업카드에서 아이의 간절함을 본다. 살면서 필요한 용기가 채워지기까지 아이가 너무 버겁지 않기를. 내가 겪어 아는 좌절, 내가 잠 못 이룬 만큼의 억울함이 아이에게는 굴레가 되지 않기를. 나의 보살핌이 아이에게는 걱정의 무게로 느껴지지 않기를. 어쩌면 나의 것인지도 모를 소망이 아이에게 버겁게 자리잡지 않기를. 그저 아이가 닿고 싶은 용기까지 닿을 수 있게 응원해주는 그런 엄마가 되었으면 한다. 잠든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준다.
‘꿈속에서 소방관이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