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자에게

용기를 강요하는 사회 고발

by 고요

너는 성과 사회에 살고 있다. 네가 만들어내는 성과로 인해 너는 평가된다. 이로 인해 너는 스스로 가해자가 되기고 하고 동시에 피해자도 되기도 한다. 아울러, 네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알게 모르게 용기를 강요하는 사회다. 용기 내어 도전하고 힘을 얻고 그 파장으로 또다시 용기를 내는 반복 구조 안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용기의 범주 안에서, 우리 각자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너는 알고 있다. 용기는 힘이 된다. 성취가 되고 더 큰 도전을 부른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선망이 된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강요받는 용기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너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작은 용기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에게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세상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역량을 다해 멋진 도전을 낸 자에게 쏟아지는 환호는 있어도, 매일 아침을 하루치 용기를 온 힘 다해 짜내 채워 넣고 그 용기를 다 사용할 수 있길 바라며 다음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을 환호하는 세상은 없었다. 작아진 채 형편없이 구겨진 너의 모습 그대로를 '그래도 좋다.'며 반겨주는 곳은 꿈속에서나 가능했다. 네 안에 자리한 목소리와 피의 요구, 그리고 그것들을 채워줄 수 없는 너의 작디작은 용기는 어찌 위로받을 수 있을까.


용기가 없는 자는 곧 야망이 없는 자가 되어 꿈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너는 이 사실을 특히 견딜 수 없었다. 너는 이 세상에 나와 첫 숨을 내뱉었고, 그 숨이 다할 때까지 온 용기를 쥐어짜 내 이 세상을 산다. 허나, 이 세상에는 없었다. 용기 없는 자에게 내미는 손길도, 연민도. 어쩌면, 성과 사회에서 용기가 없음은 곧 패배를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아무것도 가능한 것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이 주어진 세계, 그 한계 밖으로 넘어서면 붕괴와 허무뿐인 하나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이리하여 그는 그 같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로, 그 세계에서 힘을, 희망의 거부를, 그리고 위안 없는 한 삶의 고집스러운 증언을 이끌어내기로 결심할 수 있는 것이다.'


힘겹게 용기를 채워 넣어도 네가 지닌 용기는 새고 있다. 헛된 노력이 되풀이되는 삶, 너는 이런 부조리를 인지한다. 네 앞의 한 계단을 넘으면 또 한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같은 삶 안에서 너는 오늘을 산다. '오른다, 오르지 않는다.' 잠시 고민하지만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너는 오를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한번 올려다 보고, 이내 곧 움츠려 든 형상으로 곧 발을 디딜 것이다. 그러다 혹여나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더라도 너는 오르기를 반복할 것이다.


네가 꿈꾸던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그 계단을 끝끝내 오를 것이다. 세상은 계단 위에서 당당히 소리치는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테고,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올라가는 너의 모습은 그저 하나의 배경처럼 찍힐 테지. 너는 그저 하나의 배경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네가 피땀을 흘리며 다시 굴러 떨어지더라도 계단을 오르는 너의 움츠린 모습에 피가 뜨거워질지도 모른다. 때로는 안간힘을 다해 버텨내는 모습도 용기의 한 종류임을. 도전이 없어도 용기가 될 수 있음을. 움츠려 구겨진 온몸으로 너는 보여준다. 땀 한 방울마저도 웅크려진 채 나오는 이 모습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고 심장이 될 수 있음을 너는 알기에.


곧 사라질 현재를 똑똑히 바라보며, 아무리 부지런히 긁어모아도 금세 흩어져 버리는 용기를 주워 담으며, 너는 이렇게 시작과 끝을 동시에 산다. 진실을 담아 온전한 영혼을 산다.

잔인하도록 공평한 삶이다. 너는 용기 따위 아랑곳 않고 그저 묵묵히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른다. '나 여기 있소.' 소리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네가 내는 땀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자국을 낼 테니.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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