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거는 딴지
현대사회에서 끊임없이 화두가 되고 있는 '자기 확신'과 '도전'이라는 키워드가 나는 부담스럽다. 인정한다. 어쩌면 나는 그 흐름에 동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며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불편함이 곧 부담이 된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자기 확신을 하며 도전하는 사람들을 마음 다해 응원한다. 그것은 응원 받아 마땅한 일이다. 어떤 응원은 자극이 되어 응원하는 당사자에게 도전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응원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새로운 염원이 되어 피어나기도 한다. 타인의 도전을 바라보는 일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의 파도 한가운데에서 자칫 중심을 잘못 잡으면, 나 자신이 피로해지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무한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의심'을 품으며, 조용히 앎과 지혜를 넓히고자 소리 없이 나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해왔다. 자기 의심을 품은 삶은 자신이 가는 길 위에서 끊임없이 뒤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지닌다. 다수가 가는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이 맞는지 살핀다.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감각할 수 있는 공감을 지닌 삶이다. 생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소리 없는 열정을 닮은 삶이다.
일차 방정식처럼 해가 존재하는 식도 있지만 이 세상에는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Nonlinear partial differential equation)처럼 해가 없는 식 또한 존재한다.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은 사람이 현재까지 가지고 있는 수학 지식으로는 해를 구할 수 없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리며 가장 근사한 값을 찾아내곤 한다.
우리의 삶은 이처럼 다양한 변수와 그에 대한 종속변수, 다양한 함수와 차수가 엉켜있어 단번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끊임없는 자기 의심의 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그 과정은 조용하고 진척이 없게 느껴져 타인의 눈에는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끊임없이 컴퓨터를 돌려 근사한 해의 값을 찾아내듯, 제자리를 돌고 돌며 가장 근사한 인생의 해를 찾아내는 노력을 의미한다. 삶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으면 한다. 노력하는 사람 앞에 놓인 성실한 발걸음을 닮은 자기 의심은, 감히 자신을 향한 확신만큼이나 필요하다 여겨진다.
가족 모두가 잠든 밤, 할머니께서 호롱불을 켜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고 뜨개질하듯 완성되는 삶을 생각한다. 비록, 결과물이 조끼로 완성되지 않더라도 뜨개바늘을 잡던 손에 담겼던 정성과 사유는 여전히 귀하다. 조끼로 시작하여 목도리로 마무리 짓더라도 실을 풀고 새로이 뜨는 시간은 모두 필요한 과정이다. 옷을 입는 자는 뜨개에 소요된 시간과 정성을 입는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옷에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발걸음에도 소중히 가치를 매겨주는 곳이었으면 한다. 큰 소리 내어 외치지 않고 알아 달라 안간힘 쓰지 않아도 스스로의 시간을 기다려주고 때가 되면 자신의 생에 최선을 다하는 자연의 섭리처럼,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소리 내지 않는 것들, 애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간과하기보다는 아껴 보아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그런 세상, 내게는 어쩌면 그런 세상이 유토피아 인지도 모른다.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에서 카슨은 곤충의 시간과 별의 시간 모두 똑같은 시간의 연속체 위에 존재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인간은 야심이 너무나 크지만 한정된 시간을 배당받은 소멸하기 쉬운 존재다. 곤충의 시간과 별의 시간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서로의 삶에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비단 인간들만의 관계는 아닐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 찰나의 삶 안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귀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존중 받는 이유가 비단 도전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기를, 도전의 범주가 확장되어 삶의 전반에 다양한 숨소리를 반겨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맹랑하게 들릴법한 나의 목소리는 현재의 사회에 분위기에 딴지를 거는 소수 의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충격적인 선언을 하였듯, 나는 자기 확신에 찬 도전만큼이나 소리 없는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 의심이 중요하다고 외쳐본다. 도전이 당연시 되는 사회에 딴지를 걸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글들이 존재하기를 바라며 의심을 한다.
'자기 확신과 도전을 칭송하는 사회의 시선, 그것은 과연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