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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06. 2022

될 대로 되라지

딸과 싸우는 엄마

오장육부가 활활 탔다. 지금 내 꼴이 시꺼멓게 타버린 쪼그라진 만두소를 그럴싸한 만두피로 포장한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젓가락으로 슬그머니 들어보면 시꺼멓고 쭈 그라 들고 뭔가 싸한 느낌이 들고, 살짝 안을 열어보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탄 음식 마냥 나는 서 있다.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본다. 내 목소리가 너무 컸나? 혹시라도 아이가 들었나? 들렸더라도 별 수 없다. 사실을 말한 것이니까.

돌고 돌아 다시금 이 마음을 만났다. 답답하고 빠져나올 구석 하나 없는 시커멓게 타버린 마음을. 말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마음을. 다시 굳게 입이 닫히고 마는 마음을. 이번에는 엄마가 아닌 딸아이에게로부터 이 마음을 받는다.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른 시대에서 완전히 똑같은 그때의 마음을 마주한다. 한 때 버린 줄 알았던 그 마음을.


하지 못한 말을 삼킨다. 뜨거운 말들은 겨우 꿀꺽 소리를 내며  식도를 태우고 넘어간다. 위를 태운다. 부글부글 소리가 난다. 화병이란 것은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화를 삼켜서 내부 장기를 화상 입히므로 생기는 거야. 그러다 보니 비쳐 다 타지 못한 장기들이 부글부글 끓다 역류한다. 결국 말들이 튀어나온다. 뜨거워진 말들은 할 말 못 할 말을 가려내지 못한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로 시작했던가, 한참 말을 하고 가만히 서있으니, 다다다다 내뱉는 나 자신이 그 시절의 엄마 같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다다다를 듣고 있어야 할 아이를 찾아보나 내 앞에 그런 아이는 없다. 두 눈을 치켜뜬 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똑바로 나의 눈과 입을 바라본 후, 자신의 말할 타이밍을 찾는 아이가 있을 뿐.

그리고 조금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한치의 논리적 흐트러짐 없이 이야기한다.


결국, 내 입에서는 "대단하다. 좀 어른이 말하면 들어라. 설령 네가 맞고 어른이 틀리다 생각해도 그 앞에서는 좀 네네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냐?"라는 한숨 섞인 비아냥이 나오고 말았다. 이런 말 따위를 하는 나 자신이 싫었는데 결국 내뱉었다. 부글부글 끓는 화를 속으로 삼키지 못하고 토해낸 결과가 처참하다. 이토록이나 나 자신이 꼰대스럽다는 사실에 사뭇 놀라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참 편하겠다 싶기도 하다. 저렇게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고개 한번 수그리지 않은 채 자기 할 말 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저러다가 누구라도 한 명 상처주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아직까지는 무난하게 자신의 진심을 잘 전달하며 지내고 있기는 하나, 아이도 나이가 먹어갈수록 조금씩 사회 안에서 요구하는 것들에 맞추며 가면을 쓸 때 쓸 줄도 알아야 할 텐데....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이런 마음까지도 돌고 돌아 다시 만난다. 인생이 얄궂게도 잠시 잊고 지내서 제대로 도망쳤다 생각했는데, 아니 독립했었다 생각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또다시 이런 시간들을 내 앞에 펼쳐낸다. 할 말을 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며 삼켜대며 사는 나, 부글거리는 화를 기어이 삼켜 자신의 오장육부를 화상 입히는 나, 할 말을 다하는 자의 눈치를 보며 자신을 점점 잃어버리는 나, 남의 눈치를 보며 기울어진 마음의 축을 겨우겨우 되돌린 나, 그리고 그렇게 겨우 평형이 되었나 싶을 때, 다시 왔다. 이제는 엄마와 동생이 아닌 자신의 딸이라는 존재를 통해 마음의 추를 다시 또 제자리에 맞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힘겨웠던 그 노력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으리라 믿어야 한다. 결코 도로아미타불이 아님을, 도돌이표가 아님을, 무언가 이것은 변주곡임을, 똑같은 도돌이표가 아니기에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마무리할 수 있음을 믿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활활 타버린 오장육부를 되찾을 수가 없다. 무얼 먹어도 쓰고, 무얼 마셔도 뜨거운 고장 난 오장육부를 한 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될 대로 돼라. 너의 영역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되 아이의 몫과 판단은 남겨두어라. 그것에 있어서는 네 관할이 아니므로. 마음 편히 생각하련다. 이 생각이 자꾸 몸 안에 들어오지 않아서 볼펜으로 썼다. 팔의 문신처럼.

"WTF! Screw it "


그래. 한번 보자. 어떻게 가나. 될 대로 되겠지, 떨어지면 떨어지고 다시 돌아오면 돌아오고. 이렇게 애써 겨우 만들어놓은 마음의 균형의 추도 다시 기울어지는데, 뭔들 안 그럴까. 내려놓으련다. 이렇게 격하게 내려놓으면 어딘가에 가있겠지.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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