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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07. 2022

어떤 오해

예쁘다는 말에 담긴 관찰

  딸아이는 일상에서  '예쁘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돌아보면, 나 역시도 그 말을 참 좋아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칭찬에 인색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타자를 향한 칭찬에 후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칭찬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예쁘다'라는 형용사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우리 딸, 동생에게 잘 나누어주어서 참 예쁘다."

  "우리 딸, 엄마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참 예쁘다."

  "우리 딸이 이렇게 스스로 해주니 정말 예쁘다."

  실제 외모가 특출 나서 예쁘다라기 보다 아이가 하는 행동, 아이가 써준 마음 씀씀이를 칭찬할 때, 여러 가지 단어 중 나는 유독 예쁘다는 말을 많이 선택했다.


  딸아이가 일곱 살 시절, 딸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 지윤을 만났다. 딸은 자연스럽게 지윤이 '너무나도 예쁘다'라고 표현하곤 했다. 나는 아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고 지윤과 함께 무언가를 한 날은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어느 날, 유치원 담임선생님께서 딸에게 물었다.

   "너는 지윤이가 왜 그렇게 좋으니?"

 그리고, 딸아이의 대답은 한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지윤이가 너~무 예뻐서요"

 그날, 나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예쁘다는 이유로 지윤이를 좋아한다네요.'

그날, 선생님은 이 문장을 여러 번 강조하시며 말했고, 암묵적으로 그런 이유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훈계가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져 나왔다.


  딸아이는 얼굴이 예쁜 것도 예쁘다고 표현하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도 (행동이) 예쁘다라고 표현하고. 자기에게 마음 써주는 것도 (마음이) 예쁘다라고 표현하고, 자기에게 못된 말 하지 않고 착하게 말해주는 것도 (말이) 예쁘다라고 표현한다. 심지어, 프랑스어를 들으면 말이 정말 (언어톤이) 예쁘다라고 좋아하고, 글씨를 볼 때도 이 글씨는 정말 (글씨체가) 예쁘다라고 말하곤 했다.

   딸에게 '예쁘다'라는 말은 단순히 외형에 갇힌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보았을 때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사물, 행위, 소리 모두 아이에게는 예쁘다의 대상이 되었다. 우연찮게도 지윤이가 실제로 외모가 특출 나게 예뻤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표현에 딸은 오해를 받았던 것 같다. '예쁘다'라는 형용사 때문에.


  만약, 엄마인 내가 예쁘다 라는 표현 외에 좀 다른 표현을 했더라면, 아이의  말이 단순히 외모에 국한된다는 오해를 받지 않았으려나? 이후 나는 찝찝한 마음을 안고, 칭찬을 할 때면 언어 선택에 고민을 했다. 그러나 결국 오랜 관습으로 의식하지 않으면 다시 그 형용사에게로 돌아오곤 했다. 따라서, 주어와 술어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그러한 술어를 썼는지를 덧붙이는 장황한 문장이 추가되기 일쑤였다.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 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 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H마트에서 울다, p.60>


  마쉘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읽다 멈춘 이 문장으로 나는 결국 3년 전 딸아이가 겪었던 오해를 다시 꺼내 마주 보았다. 우리는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 단어가 품은 문화적 무의식까지 함께 선택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도덕과 미학을 섞어 놓아 모두 쓰일 수 있는 이 말을 단순히 외형적으로 해석한 점은, 그저 해석한 이의 오해임을 이제는 안다.  그 오해에 엉켜 붙은 오래된 억울함과 서운함을 3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보내 줄 수 있었다. 그 앞에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예쁘다가 내포한 다양한 의미에 대해 구구절절 적어 정리해둔 일기를 이제야 나는 삭제할 수 있었다.  

  '오해는 오해하는 자의 몫이다.'

일기가 담긴 글의 삭제 버튼을 누르며, 오늘에서야 이른 결론에 스스로가 기특하다. '참 잘했다.'며 나는 기특함이 가득한 나의 생각에게 '예쁘다'라는 형용사를 붙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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