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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14. 2022

이럴 거면 규칙과 제도는 왜 존재하는데?

무조건 참으라는 무력감


작년, 아홉 살 첫째 아이의 학급에 지속적으로 한 학생에게 '죽여버리겠다'라고 협박의 말을 일삼고 자신의 화를 즉흥적으로 표출하는 학생이 있었다. 같은 시기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기다려주고 가정에서 노력해주기를 기대하며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가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 학생은 선생님 앞에서도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욕을 외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마스크를 찢어 바닥에 던져버리기도 했으며, 책상을 치거나 의자를 발로 차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수업에 방해를 일으켜왔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단 하나였다.

"그 아이가 마음이 많이 아픈 아이인가 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자."

그러나, 한 해가 다 끝날 때까지 해당 학생의 태도에서 전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고, 그 아이를 두고 다른 아이들에게 수업을 선사해야 할 선생님의 의무는 점점 버거워 보였다.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한의 노력을 보였고, 담임 선생님께서도 끊임없이 소통하며 최선을 다하셨는데, 진전이 되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한 무기력함이 전해져 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학생이 수업 중에 소리를 치거나, 난동을 피워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어느 정도 눈 감고 무시하는데, 유독 우리 아이는 그러하지를 못했다. '그냥 무시하라.'는 나의 말에 억울함을 잔뜩 담아 자신의 의견을 핏대높여 피력한다. 아이는 거의 울먹였다.

"엄마, 누구가 오늘 수업 중에 '장애인 바보'라고 이야기를 했어. 장애인에게 바보라고 하는 것은 명백히 옳지 않은 일이고 그것이 인권에 어긋나는 일인데, 왜 나는 그걸 듣고 가만히.. 그러려니...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것이 아이가 내뱉은 말이었다. 아이는 끝내 울었다.

"가만히 있는 다른 아이들, 가만히 있으라 하는 선생님은 비겁해!"


그 뒤로 아이는 물었다.

"이럴 거면 제도와 규칙은 왜 만들어? 지켜지지도 않을 거면서."

학교에서 학폭에 대해 배웠고, 그런 일을 당하면 신고를 할 수 있으며, 인권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들에게 모든 사람들은 왜 늘 참으라고, 그러려니 하라고만 말할 뿐! 잘못된 행위를 한 아이가 명백히 존재하고, 그 아이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합리함과 억울함을 피력했다.


1학기의 어느 날 나는 학급의 다른 아이 엄마에게 우리 아이가 그 말을 해당 학생에게 한 이유로 우리 아이의 팔이 꺾였다고 전화를 받았다. 아이는 내게 이야기하지 않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다른 친구 엄마를 통해 듣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대답하였다.

"엄마, 나는 걔가 늘 말하는 누구 죽어버려라!라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아. 그 누구는 몹시 심한 장난꾸러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죽어야 할 만큼 나쁜 아이는 아니거든. 그래서, 그 이야기를 걔한테 말했을 뿐이야."

왜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이는 대답했다.

"담임선생님이 달려오셔서 걔가 한번 더 내 팔을 꺾으려는 걸 제지했고 야단을 치셨어."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전혀 억울하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굳이 내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합당한 조치, 억울하지 않은 마음이면 아이는 되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이다. 모두가 다 그러려니... 하고 피하는 것들이 자기의 논리에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러려니가 되지 않는 아이! 그래서 조금은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아이.' 유난스럽다'는 말의 뜻은 '언행이나 상태가 보통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나는 유난함이 무난함이 되라며, 미친 듯이 닦달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고 넘어가라."

이 말을 수없이 하며, 그저 참으라며, 우리 아이를 미친 듯이 닦달하던 순간들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물었다.

"사형이라는 제도는 이루어지고 있나요?"

사람을 죽이고, 나쁜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사형이라는 죄형을 주어져놓고, 왜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리고, 이어 물었다.

"우리 반도 그래. 학폭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학폭에 해당하는 행동을 해도 그냥 똑같이 다 다녀. 무조건 우리가 참아야 하는 거야"

고작 아홉 살, 2학년. 그나마도 코로나로 인해 입학식도 해보지 못한 채 빼앗길 1학년을 안고 사는 지금의 아이가 매일 학교에 간다고 설레어하던 웃음을 생각해 본다. 그런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커다란 진실은 '제도와 규칙이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현실세계에서는 무조건 참고, 그러려니.. 하고 피하라고만 어른들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나 그 아이를 피해 이사를 가거나, 다른 반이 되게 비는 것뿐이라는 비겁하고, 한심한 현실을 깨닫는다. 무력함의 끝 판을 마주한다.

"불합리한 것을 잘 못 참는 아이예요. 그러니, 제발 다시는 그 아이와 만나지 않게 조치해주세요."

나는 어떻게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이성으로 누르고, 부디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든 조치가 취해지길 기대해본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다. 그동안 무려 장장 몇 개월간을 한 공간에서 큰 소리와 욕설과 폭언과 협박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의 아홉 살이다. 수업 자체가 힘들었을 너무나 명백한 이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배워가는 사실상 '사회생활이자 아이들의 세계' 속의 논리가 '나는 힘이 없으니 피해있어야 한다.'가 아니길 바라본다.


해당 학생 역시 죄가 없다. 그 아이도 고작 아홉 살, 그 아이가 겪었을 알지 못할 많은 아픔들을 헤아리지 못함에 미안함으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마음들에 애정을 담았음을 고백한다. 그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는 좀 더 아름답고 따뜻한 시선이 가득하길 바라본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픔과 기쁨, 고통과 인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해당 학생에게도 부디 마음의 위로가 차올라 학교생활이 아름답길 바란다.


그리고, 숱한 시간 무방비로 고스란히 노출된 아이들에게, 두려움에 덜덜 떨며, 무조검 참고 피해야 했던 작은 마음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평생을 통 들어 들어보지 못한 욕들에 노출되고, 폭언에 떨며 늘 긴장하던 마음, 아홉 살의 마음 안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며 자라던 두려움의 감정, 억울함의 감정이 섞여 부정적인 감정들을 먼저 만나게 되던 학교! 그 학교에서 아이들이 참고 인내해 준 이 시간들이 더 이상 헛되게 지속되지 않았으면.... 그렇게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학습환경을 가지고 교육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무조건 그냥 네가 피해. 그냥 무시하고 그러려니 해. "라고 아이를 다그칠 수밖에 없었던 나, 아이는 그런 내게 "그럴 거면.. 제도와 규칙은 왜 존재하는데?" 하고 외쳤다. 그리고, 그 비겁함에 나는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쓴다. 부디, 이 진심이 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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