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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16. 2022

가을을 닮은 채식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의 변주곡: 청경채 단감 파스타


처음에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먹을 때는 오로지 마늘, 고추만 들어간 담백하고 간단한 요리를 만들곤 했다. 인덕션 한 구에서 스파게티 면을 삶고 있을 시간, 다른 한 구에서는 올리브유에 편 마늘과 베트남 고추를 조금 넣고 지글지글 볶으며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그러다, 면이 삶아지면, 그 면을 마늘을 굽고 있는 프라이팬에 투하한다. 면수 조금 남겨 부드러운 정도를 조절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접시에 담아내어 치즈를 좀 뿌려 먹으면 되었으니, 사실상 라면보다도 더 간단한 이 단순한 스파게티를 내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냉장고라는 공간 안 어딘가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파악이 된 이후부터는 그때그때의 재료를 가지고 소심하게 알리오 올리오의 변주곡을 내어본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성향은 요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레시피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내게 레시피 밖의 시도는 혁명에 가까웠다.


아이들이 어려서 고추를 먹지 못하니 알리오 올리오는 늘 낮시간에 혼자 먹을 나만의 점심 메뉴였다. 혼자 먹으니 이 변주곡은 비밀이 가능했다. 용기를 내본다. 조금씩 변주를 해본다. 어느 날은 토마토, 어느 날은 깻잎, 어느 날은 청경채, 어느 날은 양파. 냉장고 속 재료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색을 소심하게 맞춰보기도 하고, 맛을 상상하며 작은 실험을 해 본다.


가끔은 피식, 웃음이 난다.

'이게 이토록이나 과감할 일이냐며. 나란 사람도 참 소심하다며.'

이렇게 내가 하는 변주 알리오 올리오는 나만의 비밀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맛을 찾아갔다. 나는 깻잎 토핑을 잔뜩 올린 담백한 파스타를 좋아했다. 담백한 듯 매운 향이 밴 면 위에 향긋한 깻잎의 식감이 더해져 작은 행복을 주었다. 치즈를 솔솔 뿌려 다 먹고 나면 살짝 단 것들이 당겼다. 식혜 같은 음료가 있으면 입가심으로 좋겠다 생각을 했지만 냉장고에 없었기에 아쉬운 대로 물을 마셨다.


하루는 신랑이 저녁을 먹지 않은 채 퇴근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냉장고 속에는 싱싱한 청경채 한 봉과 이웃들이 나누어준 수많은 단감이 들어있다. 스파게티 면을 보글보글 끓이는 동안, 마늘을 잔뜩 넣고 매운 걸 잘 못 먹는 신랑을 생각해 고추를 평소의 반만 넣는다. 양파를 썰어 오래도록 볶는다. 마지막으로 청경채를 넣었다. 지글거리는 기름과 함께 청경채의 초록빛이 생기를 띤다. 투명한 초록빛을 내며 자태를 뽐낼 무렵, 삶아놓은 면을 투하했다. 야채와 면을 섞어 볶으며 소금으로 살살 간을 한다. 맛이 좋아 보인다. 부랴부랴 단감 하나를 깎고, 깻잎을 돌돌 만 채 채 썬다. 오늘의 토핑은 단감과 깻잎으로 정했다.


마지막은 모든 요리의 과정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플레이팅 시간이다. 나는 좋아하는 접시를 꺼내 예쁘게 담아낸다. 이제 알 수 없는 이 스파게티에 이름을 지어볼까?

둥글게 만 면 위로 마늘, 고추, 양파, 청경채가 섞여 있고, 단감을 꽃잎처럼 둘렀다. 깻잎을 조금 토핑으로 얹었다. 주황색과 초록색의 조화가 신선하다. 가을의 색을 닮았다. 낙엽들 가운데 숨어있는 초록의 상록수들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나의 멋진 가을을 닮은 채식 파스타가 되었다. '청경채 단감 파스타'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이름을 지어본다.


맛은 따봉이었다. 감이 웬 말이야? 싶은 이 비주얼에서 매콤함이 밴 스파게티면과 달콤한 단감이 어우러져 내는 맛의 조화, 부드러운 면 사이에 숨어 있는 청경채와 감의 아삭함, 그리고 깻잎 향 토핑이 내는 오묘한 조화에 놀랐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로 만들어낸 알리오 올리오의 변주곡을 처음으로 나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어본다. 소심한 자의 도전은 늘 그렇듯 이렇게 소심하다.


'와! 이거 뭐야. 진짜 맛있네.'

'그래? 다행이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감이 좀 생뚱맞은데, 감이 있어서 더 맛있다.'

'그렇지? 신기하다.'


있으면 생뚱맞을 것 같고 안 어울릴 것 같은 마음,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마음은 어쩌면 나의 삶을 닮은 것도 같다. 사람들은 거창한 도전을 한다. 실패도 성공도 확연히 드러나는 거창함이 나에게는 늘 두렵다. 나의 도전은 이렇게나 볼품없지만 가장 소소한 것으로 가장 작은 것을 도전 삼아 큰 행복을 일삼는 나의 삶은 꽤나 근사한 것도 같다. 오늘 내가 만들어낸 가을 파스타 '청경채, 단감 파스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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