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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17. 2022

"나는 정리를 왜 이리 못하는 걸까?"

프롤로그


그렇다. 나는 공간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정확히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의 주인이 되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나는 집에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을 하는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삶의 터전에서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면 저절로 나의 공간은 다듬어질 것이다. 나의 공간과 함께 나의 삶 또한 정돈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보려 한다. 정리 꽝이 정리력을 갖추기까지의 시행착오를 감내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찾아본 대로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정리와 관련한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나는 정리를 왜 이리 못하는 걸까?"

이것은 오랜 시간 내 안에 차지한 의문이었다. 유아기의 아이 둘을 키우며 정리를 하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보였다. 정리를 해야 할 시간에 잠시라도 앉아 글을 쓰고 싶고 책을 읽고 싶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육아와 집안일로 흘러가버리니까. 산더미가 된 집안일 더미에서, 무너질 듯 위태로운 물건 더미 앞에서 나는 고유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꼭 그런 애들이 있지? 시험공부해라 하면 책상부터 치우는 녀석들?"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시험철만 되면 말씀하시곤 했다. 공부하기 전에 책상 청소부터 하는 친구들이 실제로 많았다.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나는 쓰레기장 같은 책상에서 내가 사용할 작은 면만 있으면 아랑곳 않고 공부를 했다. 치우고 싶은 마음 자체가 별로 들지 않았고, 지금 필기하는 공책 아래에 책이 세 권이 쌓여있든 네 권이 쌓여있든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책상 위의 곡면을 따라 산을 오르고 내리듯 연필을 잡고 필기를 했다. 한번 집중을 시작하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그런 고도의 선택과 집중에 따른 몰입력은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유용했을지 몰라도 살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유용하지 못했다.


설거지 더미가 산더미 같이 쌓여도, 발에 물건이 차여 제대로 걸을 수 없어도, 아이들이 먹고 난 끈적한 젤리가 바닥에 붙어 있어도 내게는 거슬리지 않았기에. 한 번은 신랑이 말했다.

"아니 발에 이렇게 끈적끈적한 것이 묻는데 닦고 싶지 않아?"

"양말 신으면 되지."

일일이 걸레를 가져와 빨고 닦느니 양말 하나 신으면 땡이라는 엉뚱한 결론과,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쓸데없이 관대한 지점은 이렇게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불씨를 붙이기도 한다.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정말 어느 날 갑자기였다.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내 삶의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이런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곳곳에 숨어있을 텐데, 내가 만들어내는 사랑을 하기 싫은 일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고 하기 싫어도 직접 요리를 해서 가족들에게 나누어 줄 때 찾아오는 뿌듯함과 기쁨처럼, 내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집안 구석구석에서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의 셀프 정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결혼 십이 년 차에, 드디어 나는 집안의 살림을 차근차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갑자기라는 개연성 없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 마침 나는 마흔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였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삶의 터전을 개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 책이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 잘 모른다. 나는 기획을 먼저 하고 글을 쓰는 것에 약하다. 한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달려 쓴다. 흡사 손가락이라는 새로운 생명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결혼 12년 차에 처음으로 시작한 이 정리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남길 교훈은 뒤로 미루어 두고 자 한다.

하루하루 정리를 하며 그때의 프로세스와 마음, 그리고 실제 사용한 도구들을 정리해 놓고자 함이 이 책의 일차적 목표가 되겠다. 나중에 이사를 가서도, 혹은 우리 딸 아들이 독립을 하여 자신만의 공간을 꾸릴 때 내가 허비한 시간만큼 어영부영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그 동기가 되겠다.

이차적 목표는 정리를 하며 인생의 새 출발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미래를 향한 나의 첫걸음, 가족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아가서는 나의 삶과 인생을 정돈하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남기며, 그 과정에서 내게 찾아오는 소소한 변화들을 온전히 감각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본다.


철저하게 혼자서. 기록과 함께.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기대감과 두려움과 함께.


© philbernd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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