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Nov 19. 2022

걱정과 불안을 버리는 비상약 정리

아픔에도 추억이 있다.


일곱 살 둘째 아이에게서 갑작스러운 뇌출혈이 일어난 이후, 아이는 지금까지 두 번의 입원을 하였고, 현재 세 번째 입원을 앞두고 있다. 불안하고 두려운 기간 동안,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으로 나는 무사히 보호자로서의 몇 개월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혈관조영술을 마치고 퇴원한 순간, 나는 결국 무너졌다. 기다렸다는 듯 도미노처럼 증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극심한 위염과 식도염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고, 후두염, 침샘염, 성대결절, 임파선염이 동시에 구강을 점령했다. 터져버린 허리 디스크로 인해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불편한 상태가 되었다. 처방약을 먹으며 다른 증세의 약을 같이 먹어도 되는지 여부를 두고 늘 전문가에게 상의를 해야 했으며, 처방받은 약들은 기세가 무섭게 쌓여갔다.


나는 걱정과 불안이 많다. 일어나지 않을 일까지 사서 걱정하는 부류의 사람에게 그렇지 않아도 비상약은 필수였는데, 코로나 시기를 관통하며 내게는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약을 쟁여 놓는 일이었다.

정리에 문외한인 나는 급한 대로 커다란 여행용 보조 천가방에 모든 종류의 약을 다 넣어둔 채, 외상을 입을 때나 내복약을 먹어야 할 때 동일하게 그 큰 가방을 열어 뒤져야 했다. 급하게 과산화수소수를 찾아야 하는데,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가방을 와르르 쏟아 찾아낸 후, 두 팔을 가득 벌려 쓰레받기로 쓸어 담듯 다시 온갖 약 가지들을 담아 넣곤 하였다. 모기퇴치제부터 정로환까지, 파스부터 바셀린까지, 구강 가글부터 안약까지 종류도 형태도 다양한 약들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오늘의 정리는 <약>이다. 나는 모든 약을 식탁에 전부 꺼냈다, 유효일자를 보고 버리기 시작했다. 2009년 마데카솔이 최고령자였고, 2015년에 받은 엄청난 약의 피부과 연고가 얼굴을 내밀었다. 대일밴드와 파스는 유효기간이 지난 지 오래라 끈적한 부분이 아예 사라졌으며, 오래된 포비돈은 플라스틱마저도 삭은 듯 보였다. 싹싹 긁어모아 사용할 수 없는 약들을 버린다.

뜯지도 않은 리도멕스 연고를 발견하자,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가 떠올랐다. 끔찍한 임신소양증에 걸렸었다. 사람의 살이 이런 모양이 될 수 있구나 싶을 정도의 심한 소양증으로 옷조차 입을 수 없었고, 임신이라는 상태로 인해 스테로이드를 쓸 수 없어, 오로지 처방해준 연고에만 의지하며 아기를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제는 유효기간이 다 지나, 자신의 생명을 다한 연고를 바라보며 아이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출산의 순간을 떠올려 본다. 언젠가 우리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나와 둘째 아이는 피 냄새 가득한 고요 속에서 만났다. 나는 아이가 참 궁금했다. 내가 만나게 될 아이가 어떤 사람일까 기다리던 시간들은 설레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통스럽기도 했다. 나의 살은 보기 흉하게 썩어 문 들어졌고 옷을 입을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흉하게 살갗이 벗겨지고 진물이 흘렀다. 항문으로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치질이 튀어나왔는데 몸속에 들어있어야 할 장기가 몸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곳은 참으로 건조했고 쓰라렸다. 원래 위치로 돌려놓기 위하여 매번 나는 손가락을 집어넣어 항문 깊숙이 꾹꾹 누르곤 했다. 쓰라린 수치심과 장기가 제대로 들어간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썩어가는 피부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면 좀 나을까 싶었고, 흘러내리는 치질에는 수술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아기를 만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겠지 하며 의지를 다졌다. 나는 아기의 발길질을 느꼈고 불쑥불쑥 느껴지는 움직임을 사랑했다. 가만히 배에 손을 얹고 이야기를 하면 나의 아기는 아는지 모르는지 움직임이 평온해졌고, 내가 잠을 잘 즈음되면 신나게 뛰노는지 활발해지곤 했다. 그 움직임은 동글동글하고 부드럽게 활기찼다.


배 속의 아기는 그렇게 태초부터 둥근 마음을 가진 활기찬 아이였다. 나는 아기를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옴을 느꼈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기가 새로운 세상을 위해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든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진통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을 작은 뱃속 태아의 안간힘을 생각하며 나는 진통을 견뎠다.

 나는 출산의 순간이 점점 다가옴을 느낀다. 강도가 세어지는 진통에 아찔해지는 정신을 견디며 나는 곧 보게 될 아기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기는 내게 신호를 보내주었다.

'지금이에요. 힘을 주어요. 제가 그 힘을 받아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게요.'

들리지 않는 목소리, 보이지 않는 나의 아기,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이 뱃속의 아기가 가장 힘들게 애를 쓰고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나는 아기가 보내주는 그 본능적인 움직임에 맞추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힘주기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뱃속의 아기와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한 협력이었고, 우리는 정말 멋진 팀이었다.


단번에 미끄러지듯 나온 첫째와는 달리, 둘째의 머리는 결국 나의 다리 사이에 걸리고 말았다. 살이 찢어진다. 파 바 바박. 자연스럽게 터져버린 살은 여기저기로 폭탄 파편 튀기는 것만 같다. 우습게도 나는 이 순간 팝콘이 튀겨지는 생각이 났다. 전자레인지 안에서 터져버리는 팝콘처럼 찢어지는 살을 느끼며 나는 마음속으로 바랐다.

'아가, 어서 나오렴. 숨 쉬기 힘들지?'

계속 거기 끼어있으면 아기가 숨을 못 쉴 텐데 싶은 마음에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 낸다. 얼굴에 터지는 실핏줄처럼, 눈과 멀리 있어 나는 볼 수 없지만 다리 사이에서 옆으로 앞뒤로 가차 없이 찢어져 나가는 살점들 사이에서, 드디어 아기의 동그란 머리가 빠져나왔다. 좌르륵. 흐르는 무언가와 함께. 그것이 피인지 물인지 알 길 없는 나는 그저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안도한다.

'응애~'


방금까지도 나와 함께 생활하던 태아는 이제 오롯한 아기가 된다. 안간힘을 질러대며 우는 나의 아기를 가슴 안에 안는다. 작고 따뜻하다. 믿을 수 없는 고통 끝의 얼얼한 나의 다리 사이는 감각이 없다.

'판이야.'

태명을 부르니 별안간 아기는 울음을 멈춘다. 가만히 안긴 채, 아기는 찌그린 채 눈을 뜨고 싶어 꿈틀거렸다.

'판이야, 엄마야. 보고 싶었어. 엄마한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해. 엄마가 아주 많이 보고 싶었단다.'

아기는 가만히 아주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아마 그의 눈에는 아직 내가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분명 아기는 나의 목소리를 향해 왔다. 우리는 아직 연결되어 있다. 나의 냄새와 목소리를 아기는 기억했다. 그렇게 피 냄새가 밴 공기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우 리의 첫 만남, 나의 둘째가 세상에서 들었던 가장 첫 한마디는 '판이야, 엄마가 보고 싶었어.' 였음을. 그리고 둘째를 처음 안고 만난 고요한 연결이 아직까지도 내게 너무나 생생함을, 나는 둘째를 임신했던 모든 기간 나와 함께 한 연고를 보며 떠올린다.


그렇게 만난 아이가 받을 앞으로의 치료를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세상의 첫 순간을 오기 위해 아기가가 쥐어짜 내던 그 안간힘,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고통 끝에 우리는 만났음을. 몸속의 핏줄이 폭죽처럼 터지며, 끝끝내 두 다리 사이의 살이 폭탄처럼 찢어질 때, 피인지 물인지 모를 것들이 콸콸 쏟아지며 한 세계를 깨고 나온 나의 아이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안다.

믿을 수 없는 고통이 동반한 분만의 순간에도 아기는 나를 이끌어주었음을, 그렇게 나는 이번에도 나의 아이를 믿으며 한발 한발 알 수 없는 세계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소리들을 좇아 걸어갈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가 이 세상에 와주어 참 고맙다.


눈물이 한 방울 똑 흐를 즈음, 아이들의 해열제 정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집안의 상비약 정리를 모두 마쳤다. 여전히 '혹시 모르니' 하는 불안에 넉넉하게 남겨둔 아이들의 해열제, 비상 감기약, 외상 약이 약상자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였고, 갖가지 염증으로 처방받은 약들을 한데 따로 모아 라벨링을 해 놓았다. 아픈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올라올 즈음, 아직 사용하지 않고 말 그대로 '비상약'의 역할을 했던 약들을 만난다.


생각해보면, 왜 하필 우리 아이인가? 하며 억울할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지르며 아픔을 호소했을 때, 이미 코로나를 앓고 난 후였어서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 시기로 발이 묶여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해 아쉬워할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감싸 쥔 머리로 토를 할 때, 우리가 여행지에 있었다면 얼마나 불안했을까? 지루한 일상 중에 아팠음에 감사했다.

생각해보면 이름 없는 전업주부 쭈구리가 된 것이 부끄럽고 처량한 일이 아니었다. 별 볼일 없는 먼지 같은 나는 공기 중에 미세하게 재와 함께 들러붙어 만들어내는 눈송이 결정처럼, 필요한 순간에 아픈 아이 곁에 있어 줄 수 있었다. 나의 구질함이 쓸모로 사용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버린 약은 10리터 쓰레기 봉지를 가득 채웠다. 나의 슬픔, 억울, 불안, 걱정 모두 쓰레기봉투 안에 지나가버린 약들과 함께 정리되었다. 이제, 세 밤만 자면 아이의 세 번째 입원이다. 불안보다는 희망을 품고 싶어 나는 몸부림치며, 기도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를 한다. 아직 사용 가능한 잘 정리된 약통을 바라보며, 아프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래서 사용하지 못하고 유효기간이 지나가 버리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비상으로 약을 구비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의 쭈글거림과 구질함이 쓸모가 되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고 응원이 될 수 있듯이, 잘 정리된 비상약을 바라보며 나는 희망을 품어본다.


비상약 정리 after1
약정리(처방된 약) after 2
약정리 before 1
약정리 before 2
약정리용 투명 서랍장 (다이소용품)


작가의 이전글 한 시절을 함께 살다 발이 되어 제 역할을 다한 물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