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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21. 2022

가을의 모든 것은 유서였다.

기대



가을.

가을의 모든 것은 유서였다.

단풍이 해를 관통해 만들어낸 빛이 낙엽이 되어 쭈그러지고, 흙으로 돌아가기 직전, 모든 색은 흙과 흡사해져 간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계절이 오기 전까지 제대로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던 나무가 드디어 날것의 맨몸을 드러낸다. 나뭇가지에는 더 이상 잎사귀라는 옷이 붙어있지 않다.


나무의 아름다운 나신, 떨어져 버린 나뭇잎이 내는 달짝한 냄새, 가을 석양 직전의 늘어진 붉은 해, 그리고, 아이들이 내는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11월의 마지막 숲.


다시 이곳을 찾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터이니, 유서와 같은 이 계절 앞에 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온전히 마음에 담을 뿐이다.

다시 이곳을 찾을 때는 아이의 치료가 전부 끝나 더 이상의 아픔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본다. 쓸쓸해 보이는 늦가을의 풍경 속에 희망을 본다. 나무의 나신이 석양을 받아 뿜어내는 힘을 느끼며, 발가벗겨진 지금이 지나간 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나는 희망을 품는다.


기.

기다린다.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대.

대답이 내 안에 들릴 때까지.


모든 가을은 유서였고, 나는 기대를 내 안에 품고 그 유서를 써 내려간다. 끝나지 않을 유서, 가을을 담고서.



11월 마지막 숲 놀이 후 찍은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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