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Nov 22. 2022

너의 뒷모습

또다시 입원

입원 하루 전, 놀이터에서 호는 준서 형아와 여느 날과 같이 신나게 뛰어놀았다. 땀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쓱 문지르면 어김없이 꾀죄죄한 먼지가 묻어 영락없는 시골 아이들이 되어 깔깔 웃으며 뛰어다녔다. 축구공이 움직일 때마다 건강한 남자아이들의 부지런한 스텝이 따라 움직였다. 아홉 살 준서는 집에 들어갈 때 즈음되어, 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호야, 용기를 내!"

줄넘기를 챙겨 자기 집으로 들어가던 준서는 갑자기 뛰어오더니 호를 백허그한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는 너무 무서울 것 같은데, 잘하고 와야 해! 용기 내! 호야, 잘해!"

꾀죄죄하게 흐르는 땀이 얼굴로 머리로 범벅이 된 아홉 살과 일곱 살 남자아이들은 그렇게 땀으로 가득 찬 머리를 맞대 꼭 안더니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현관까지 가서도 준서는 손을 흔들었고, 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방방 뛰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어둑해진 놀이터에는 때마침 딸깍 하며 가로수가 들어왔다. 훈훈한 듯 선선한 바람이 지나가며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사사삭 움직이며 찰나의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집에 돌아오니 샛노란 색 귤 상자가 현관 앞에 놓여있다. 제주도 우수 농산물이라는 딱지가 붙은 서귀포 감귤이다. 4층 친구 유주가 병원에서 먹으라며 응원품을 보내주었다. 제주도에 늘 가고 싶어 했던 호는 이제 제주도에서 온 귤을 가지고 병원으로 향한다. 상자 가득 들어있는 동그랗고 예쁜 귤 송이를 하나하나 꺼내며, 보내준 마음을 담는다. 한 주먹이 채 안 되는 매끄러운 동그람을 느끼며 하나하나 귤을 쌀 때마다 나는 귤을 매만진다. 내 손에 묻은 향긋한 과일의 체취에 두려움과 불안함이 덮어 사그라든다.


 귤과 초콜릿을 같이 먹으면 맛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호는 오늘 아침 레아와 수아가 전해준 빼빼로를 먹는다. 삐뚤빼뚤 한 글씨로 정성을 담아 쓴 친구의 편지에는 지호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손수 고르고 포장한 선물을 뜯자, 부엉이 모양의 작은 팝 잇이 나온다. 레아가 호를 위해 고사리 손을 바쁘게 움직여 가며 집중하여 포장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어린이가 어린이에게 보내는 진심이 심장을 관통한다. 그런 응원을 받는다는 것은 굳건한 희망을 선물 받은 것과 다름없다.


"가기 싫어."

호는 입원 당일 끝내 울었다. 그리고, 우리 집 현관문 앞에는 귀여운 고양이 쇼핑백에 부드러운 고양이 파우치백 선물이 왔다. 6층의 대겸이 형아네가 힘을 내라며 호가 좋아하는 포켓몬 카드를 잔뜩 넣어주었다. 긴장으로 아침밥까지 남긴 호는 카드를 한 장 한 장 뜯으며 설렘의 시간을 만끽한다. 찰나의 무장해제 순간, 아이에게 포켓몬 카드라는 역할이 톡톡히 제 역할을 해냄에, 긴장의 순간에 맞춰 선물을 전해준 이웃 이모야의 사랑에 나는 감사할 뿐이다. 굳게 닫힌 호의 입술에 오늘 처음으로 환한 미소가 번졌다.


'엄마, 나 몇 밤 자면 병원 가?'

'엄마, 나 이제 머리 안 아픈데 병원 안 가면 안 돼?'

'엄마, 나 무서워.'

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나는 아이의 동그란 머리를 살그머니 안아주었다. 아이의 동그란 머리가 나의 턱 아래에서 숨을 쉰다. 숨결마다 조금씩 오르내리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느끼며 눈물이 한 방울 흐른다. 아이는 결코 보지 못했을 눈물을 삼키며 굳건한 목소리로 나는 말한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그리고, 이 굳건한 목소리는 현실이 될 것임을 나는 안다. 호는 새롭게 채워진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준 가족, 친지, 많은 이모야들, 친구들의 응원으로 채워진 채, 병원으로 향한다.


 두려운 마음을 안은채, 일곱 살이 견디기엔 힘든 일들을 굳세게 해내러 한 발 한 발 간다. 말하지 못할 두려움, 피하고 싶으나 마주해야 할 인생이라는 길을, 이 작은 아이는 굳세게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마른침을 겨우 삼킨다.


아이는 이번 입원행에 아이아빠와 함께 했습니다. 내일이 고비예요. 잘 이겨낼수있길 빌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가을의 모든 것은 유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