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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24. 2022

나의 빚은 빛나게 쌓여간다.

심장이 뜯기고 피가 마르고 온 몸이 탄 후에 맞은 것은.


"심장이 뜯겨나간다."

"피가 바싹바싹 마른다."

"온몸이 새카맣게 탄다."


이 문장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 몸으로 체감한 날들이다. 아이 치료를 위한 긴 여정의 마지막 관문, 그 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다리의 힘이 무너졌다. 저혈압이 심한 나는 끝내 어지러움증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루를 간신히 견딘 긴장이 풀어지며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 날, 하루 종일 나는 목이 말랐다. 물을 5리터를 넘게 마셨음에도 나의 몸 안에 들어가는 족족 빨아들이는 스펀지가 들어 있는 듯, 나의 수분을 빼앗아갔다. 피가 바싹바싹 말라갔다. 이미 망가져버린 위, 식도, 침샘, 임파선, 후두는 단골 염증의 소굴이 되었고, 엄청난 양을 뿜어내는 생리혈까지 덮쳐 나는 이 날 병원에 동행하지 않았다. 병원 보호자로 신랑이 든든히 집을 나섰고, 나는 집에서 첫째 아이를 돌보며 둘째 아이의 수술을 응원했다. 불안과 두려움이 강한 사람이지만 무너질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견뎌온 지난 육 개월 동안 내게 남겨진 염증들을 다스리며, 이 날 하루만큼은 온 마음을 모았다.


영상통화로 만난 아이는 울었다.

'무서워.'

그렁그렁한 눈물을 화면으로 만지며, 심장 한편이 뜯겨나갔다. 그동안 어렴풋이 내게 존재하고 있구나 알고 있던 심장의 정확한 위치가 느껴졌다. 나의 몸 어느 좌표에 심장이 존재하는지, 뜯겨나간 뜨겁고 날카로운 통증에 가슴을 꾹 누른다.



아이의 머리에 무거운 쇠 프레임이 씌워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을 본다. 희망의 왕관이라 붙인 이름이 무색하게 아이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네 군데 못을 박아 고정한 프레임에 머리가 죄이고 무겁고 아파서 아이는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에 무릎을 꿇고 그저 기도를 한다. 부디 아이가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간절히 외치는 소리가 닿기를 바라며 온 몸이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수그린 머리부터 새카맣게 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한 때 내 몸이었다는 사실에 심장으로 보고, 배꼽으로 보고, 다리로 보고, 발가락으로 보고.. 그 후에 완전히 타들어간 한 줌의 재가 된 나를 본다. 사람이 이렇게 타들어갈 수 있는 것이구나. 온몸으로 깨닫는다. 이 말은 이렇게 타들어간 사람이 재가 되어 만들어냈을 거야.


모든 것이 다 끝났을 때, 나는 결국 쓰러졌다.

"엄마!"

외마디 비명의 첫째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는데, 초점이 흐려지고 눈앞 프레임이 흔들리며 쾅 아래로 떨어진다. 저혈압성 어지러움증을 달고 살았어도 유독 이 날은 심했다. 하늘이 휭휭 돌고 머리를 들 수 없을 즈음 그래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마음에 이제야 눈물이 쏟아진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니, 되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내준 진심 어린 응원들을 떠올린다. 그동안 나는 전혀 몰랐다. 나의 이웃이 그런 아픔을 겪었다는 것을, 나의 친구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나의 지인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보이는 고통 앞에서 그들이 보내준 진심 어린 응원 앞에서 나는 다시 몸을 웅크린다. 아픔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음을. 아픔에 감응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그런 마음으로 끝내 견뎌낼 수 있음을... 그리고, 끝끝내 내가 마음에 담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무엇인지 나는 깨닫는다. 고마운 마음으로 채워지는 삶, 사랑으로 채워지는 삶은 고통조차도 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살면서 부탁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받는 것조차도 잘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올 한 해 참 많이도 받았다. 이 마음, 저 마음, 무한히 넘치는 마음을 그저 받고 받고 또 받았다. 이렇게 받아도 될까? 거절조차 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고마운 마음을 받고 또 받는다. 빚이라 생각하며 마음 깊이 넣어둔다. 언젠가 내가 꼭 갚아야 할 마음의 빚. 두배로 세배로 펼쳐내어 베풀 감사의 빚. 그 빚이 빛이 될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는 거절을 마다한다. 그렇게 나의 빚은 빛나게 쌓여간다.


*아이 수술 무사히 마쳤습니다. 마음을 모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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