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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28. 2022

완벽한 하루는 없어도 완벽한 순간은 존재했다.

온전한 감사


해가 깊숙이 들어오는 거실을 보니 겨울이 왔구나 체감하게 돼요. 아주 조금 열어둔 창문 사이를 틈 타 조금 더 강하게 들어오는 겨울 태양은 붉은빛 한줄기를 강하게 뿜어내네요. 훈훈한 집 안에서는 한줄기 찬 바람과 빛이 동시에 뿜어져 나와 제가 앉아있는 식탁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아이 둘 모두 학교로 유치원으로 향한 일상, 오랜만에 맞이하는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마음은 아직 초여름에 멎어있나 봐요. 바깥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덜컥합니다. 길을 가다 떼쓰는 어린아이가 누워라도 있으면, 혹시 쓰러진 것은 아닐까? 두 다리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떼쓰는 아이를 달래다 지친 아이의 엄마는 저를 무표정으로 쳐다보아요.

'떼를 쓰니 다행이다. 쓰러진 것이 아니구나.'

떼쓰는 아이의 건강함에 감사하며 다시 끙차 일어나 오던 길을 걸어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한 번도 떼를 써서 길을 멈춘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예고도 없이 이렇게 길을 가다 그대로 멈추어 버렸네요. 그 멈춤조차 감사함이 되어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제 몸의 어느 좌표쯤에 심장이 존재하는지 투명하게 알게 될 정도로 아팠어요. '심장이 뜯겨 나간다.'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어요.


그런 와중에 저를 살게 하였던 것은 그저 읽고 쓰는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시간은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세 차례의 입원 중에 병실에까지 들고 가며 찰나에 읽은 문장들, 쓰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조심스레 두드리던 무선 키보드, 그리고... 함께 마음을 모아준 마음.

이 세 가지는, 제가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올 한 해는 위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몹시 높은 기질의 사람으로 살면서 겪은 최고난도의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그동안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생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분들이 보내주신 엄청난 위로와 응원, 이런 힘든 일들을 겪어내고 위로해주신 분들, 조용히 진심을 전달해 주신 많은 분들.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마음에 담습니다.


먼 훗날 회상했을 때, 제 자신이 이 마음을 잊고 살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의 마음을 남깁니다. 두고두고 꺼내보며, 살면서 가장 낮은 자세로 기어갔던 이 시기를... 그리고 제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힘든 시기에 받은 위로를 모아, 누군가의 삶에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절대로 아이 앞에 앞서가는 엄마가 되지 않을 거라고,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겠노라고 다짐합니다. 아이가 멈추거나 넘어져도 뒤돌아 볼 때 환히 서 있는 엄마가 되겠습니다.


쓰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매일 글을 쓰며 새로운 용기로 새로운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소심하고 용기 없는 저의 작은 도전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제 안의 힘을 채워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소리 없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겠습니다. 멈추면 멈춘 대로 지금에 감사하면서요. 가장 뒤에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슴 가득 담으면서요.


그동안 제게 완벽한 하루는 없었지만 완벽한 순간은 늘 존재했습니다.



https://brunch.co.kr/@daily-journey/138

아이가 좋아하는 여우 인형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부드러운 털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 황폐한 나에 비해, 인형은 언제나 그렇듯 보들보들하다. 털의 섬세한 방향과 밝은 주황색이 그대로였다. 여우 인형은 병원 입원실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보드라운 털은 조용히 자기의 습성을 지켰다. 이 인형은 이곳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아이에게 낯선 병원의 두려움을 덜어가고, 우리 집을 느끼게 하고, 나긋나긋하고 보드라운 재질로 아이의 심리를 어루만져주기에......

'여우를 데려오기를 잘했다. '

나 역시, 그곳에서 마음 기댈 곳 없이 불안할 때면 여우를 가만히 안아보곤 했다. 갈 곳 없지만, 기댈 마음이 있어 다행히 다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완벽한 하루는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완벽한 순간들은 존재했다.

이를테면, 잠든 아이를 병실 침대에 눕힌 후, 여우를 가슴에 안으며 일기를 쓰던 순간들.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며 살아있음을 느끼고 감사하던 순간들. 모든 욕심을 버리고 그저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에 감사하며 눈물 흘리던 순간들. 이 순간들은 완벽했다.



https://brunch.co.kr/@daily-journey/184


살얼음판을 기어간다.

납작 엎드려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힘이 최소한으로 들어가게 주의한다.


미끄러지지 않게 기어간다.

언제든 얼음이 깨져 저 아래로 꺼져버릴 것이다.

두려움이 살을 파고든다.


살얼음판을 지났다.

땅 위를 기어간다.  

낮은 자세를 하고 나니 보인다.

땅 위를 기어가는 작은 개미들이.

땅에 귀를 대니 들린다.

땅이 내는 보글보글 소리가.  

그 소리 끝에는 좌악 갈라지는 흙의 소리가.


기어가니 느껴진다.  

발 밑 세상의 삶이.

땅이 주는 포근함

땅 아래의 것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이 주는 위로.


작은 풀꽃들에 머문 이슬방울

꽃잎 속의 작은 꽃술.

작은 것들을 취하며 움직이는 더 작은 생명들.

아주 간간히 산들거리는 바람,

그 바람에 한들거리는 작은 모든 것.

흙을 기어가는 작은 벌레들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 나지 않는 작은 것들이 전해주는 순간들을 응시한다.

유심히 보아야만 보이는 것들,

온몸과 마음으로 집중을 해야만 잡을 수 있는 찰나의 것들을.


마음을 따라간다.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마음.

여기저기에서 간절한 마음들이 담겨 내게로 온다.

진정한 마음이 손을 타고 발을 타고 심장에 도달한다.


형태가 없는 것들이 형태를 지니고,

소리가 없는 것들이 소리를 지닌다.

"감사합니다."

내게 온 마음들에게 인사를 한다.

땅 아래 수그러들었던 땅의 소리, 흙내음 그 밑에 있던 마음의 소리,

한 명 한 명이 모아 보내준 소리가 심장을 꿰뚫는다.  


삶을 사는 것,

나의 삶에 사랑을 담아 사는 것,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사는 것,

이것을 반드시 하겠다.

진심은 어떤 형태로든 닿는다.

진심과 감사함을 담아 사랑으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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