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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Dec 02. 2022

한파 속의 생존 수영

아이의 일기 속 그날을 그려보며

초등학교 3학년 첫째의 일기를 몰래 엿보며.. 나는 아이가 환히 웃으며 임했을 그날을 아이 글씨로 된 행간을 더듬으며 그려볼 뿐이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들의 연속이다. 급작스레 찾아온 한파로 나갔다 들어오면 잠이 쏟아졌고, 온도 변화에 적응 못하는 사십 대의 몸은 달달 떨리는 아래턱을 어금니로 힘주어 누름과 동시에 발은 미친 듯이 동동 구르기를 반복하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구사하기 바쁘다.


이런 11월 말과 12월 초, 첫째 아이의 학교에서는 생존수영 수업을 갔다. 청소년수련관 수영장을 이용하는 생존수영은 초등학교 정규 교과 과정의 일환으로 3학년 때 하게 되어있는데, 여름, 가을을 다 놔둔 한파가 덮치는 12월에 수영장에 가게 된 것이다.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수영을 한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겹쳐져 내내 이야기를 해댔다. 탈의와 샤워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영을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행복함이 동시에 겹쳐져 이 마음 저마음 사이를 오가는 아이의 모습을 나는 말없이 바라본다. 엄마가 되어 보는 이 마음에는 오로지 '한파'라는 한 단어가 체한 듯 걸려 내려가질 않았다.


학교 측에서 조금 미리미리 신청을 했더라면 가까운 곳으로, 좀 더 좋은 날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이끌어내었을 텐데... 아쉬움이 추운 공기 속 입김만큼이나 길게 남았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입학식도 해보지 못하고 소풍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아이들인데, 이 추운 날 입을 달달 떨어가며 차가운 수영장 물에서 수영을 한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저리다.

그러나, 생존수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짜 한파를 무릅쓰고 수영을 배운다며 아이 앞에서는 호기롭게 웃었다.


"엄마, 진짜 너무 재밌어. 근데, 너무 춥기도 해."

"엄마, 나 내일 가려면 오늘 진짜 따뜻하게 집에 있어야겠어. 감기라도 걸리면 못 가니까"

하지만, 이런 아이의 말에 나는 하마터면 "엄마는 네가 그냥 안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뻔했다. 사실은 엄마는 그냥 체험학습 쓰고 집에서 같이 있었으면 한다고, 너무 추운 날 고생하는 게 싫다고. 그러나, 아이가 사실상 학교를 입학해서 하는 첫 공식적인 외부활동이자, 단체로 움직이며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에 이 또한 큰 경험이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수영을 하는 삼 일간은 다른 학원을 모두 결석하고 따뜻한 집안에서 푹 쉬게 하였고, 무사히 삼 일간 한파 속의 생존수영을 마치게 되었다.

아이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느꼈는지는 오롯이 아이의 몫이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추위에 떨면서 너무너무 춥지만 그래도 이건 해야 하는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몸을 알아서 돌보던 녀석에게서 자신의 몫에 대한 책임을 느꼈다. 회장 선거 나는 필요 없다, 장기자랑 나는 안 한다, 연주고 버스킹이고 나랑 무관하다 하여 그동안은 몰랐는데, 본인이 원하는 것에 있어서는 도망가기보다 돌파하는 구석도 있었구나, 몰랐던 아이의 모습도 보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써놓은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며 세세한 하루를 상상해본다. 종알종알 수다스러운 아이가 아님이 어쩔 때는 참 서운하지만, 워낙에 성향이 그러한 것을 어쩐단 말인가... 그나마 일기라도 훔쳐볼 수 있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며. 아이가 환히 웃으며 임했을 그날그날을 아이의 글씨로 행간을 더듬으며 단어 사이에 머물며 그려볼 뿐이다.


한파 속에서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던 삼 일간의 수영 수업, 이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겪는 첫 체험수업으로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추억이 되어있겠지. "아이고 맞다. 그때 참으로 추웠지.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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