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Dec 07. 2022

무선 키보드, 나의 산소호흡기

틈새 글쓰기의 쾌락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은 거 있어?"

언제나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무것도 없어."

정말 그랬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갈수록 원래부터도 없던 소유욕이 점점 줄었을 뿐 아니라 생일이 그다지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해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비공개로 혼자만 쓰는 일기에도 습관이 붙어 아기를 낳고 키우는 십 년 동안의 시간에도 어떻게든 나는 써야만 했다. 그러나, 아기를 키우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잠시의 틈이 날 때를 노려 노트북을 열고 앉아 손을 키보드에 올리면 어김없이 "응애" 하고 아기가 울어댔다. 노트북을 포기하고 집안 여기저기에 수첩과 펜을 두었다.

"제발 이거 좀 굴러다니지 않게 치워."

신랑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은 채, 베란다에서 눅눅한 물결모양을 만들어가는 수첩, 화장실 똥 휴지 위의 수첩, 전자레인지 위에 위치한 수첩, 가스레인지 후드 위에 놓인 수첩, 수유등 옆의 수첩, 신발장 아래, 바닥에 굴러다니는 수첩. 모두 내게 필요한 수첩이었다. 아이가 양말을 꺼내 신고 신을 신는 그 찰나의 순간에 신발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수첩을 들고 벽을 책상 삼아 선 채로 뭐라도 적어대곤 했다.


"와. 진짜. 누가 보면 뭐 작가라 하겠어. 책 없는 작가 양반!"

비아냥도 괜찮았다. 쓸 수만 있다면. 작가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어떤 사람은 숨을 쉬듯 써야 산다고. 쓰지 않으면 질식한다고. 죽은 사람과 다름없다고.

이것은 잘 쓰고 못쓰고의 차원이 아니었다. 생존의 문제였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사치였다. 나의 글을 단정히 다듬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나만의 시간이 전무했던 만 6년의 가정보육 엄마의 기간. 나는 그저 일단 쓸 수 있으면 깊은 한 숨을 쉰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외쳤다.

"엄마, 나가 나가!"

밖에서는 그마저 수첩에 펜을 집고 쓸 여유 따윈 없었다. 눈은 언제나 아이를 향하고 있으며 아이가 부르면 달라나갈 태세였으니. 그때부터 나는 핸드폰의 음성 녹음 기능을 사용하였다. 카카오스토리(이하 카스)라 불리는 앱을 켜고 비공개 설정 후, 목소리로 급하게 아이가 말했던 어록을 기록하고, 그때그때의 단상을 기록했다. 추운 겨울에는 장갑을 벗고 앱을 켠 후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열심히 방금 떠오른 생각을 음성으로 옮겼다. 언젠가 글로 정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렇게 조각난 글은 자꾸만 쌓여갔다.


아이가 많이 컸지만 여전히 둘째는 일곱 살, 미취학 아동이고, 그렇기에 나는 놀이터에 함께 있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 아이의 엄마라기보다 놀이터 지킴이 동네 이모야가 돼버려서 아이들은 내게 달려와 팔에 자기 가방을 걸어두고 가기도 하고, 물이 마시고 싶다. 쉬가 마렵다며 1층의 우리 집을 공공장소처럼 드나들곤 했다. 우리 집에는 늘 간식이 끊이지 않았고, 아이들이 다칠 때 급하게 발라줄 연고와 뽀로로 밴드가 신발 장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혹여나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나면 다툼 중재자로 활동하고, 누군가 울면 달램 이모야로 활동하고, 다치면 응급치료사로 뛰어나가야 하는 바쁜 아줌마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시간은 의외로 나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잘 노는 틈을 타, 나는 책이 읽고 싶었고 글이 쓰고 싶었다.


신랑이 생일 선물에 대해 물은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갖고 싶은 게 하나 생겼어. 무선 키보드가 갖고 싶어. 많이 비쌀까?"

아이들의 선물이었다면 거침없이 말했을 테지만 자신이 버는 돈이 1원도 없는 전업주부 만 12년 차는 자기의 생일 선물을 이야기하는데 이토록 조심스럽다.

고마운 신랑은 아무 말 없이 바로 그다음 날, 하얗고 예쁜 무선 키보드를 선물해주었다. 그렇게, 무선 키보드는 나의 삶을 바꾸었다. 써야 숨이 쉬어지는 사람에게 주어진 무선 키보드는 산소호흡기와 같았다. 노브랜드 장바구니에서 무와 배추 사이에 뒹굴며 나와 함께 장도 보고, 태권도 가방 안에 들어가 아이가 나오길 함께 기다리고, 축구화 가방 안에서 땀냄새나는 수건과 함께 뒹굴기도 하면서, 어디든 함께 했다.


놀이터 지킴이자 응급처치사이자 화해와 달램 전문 아주미는 놀이터 벤치와 계단을 벗 삼아 늘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이모야 뭐해요?"

아이들은 한참 놀다가 목이 마르다며 내게 물을 요청하며 키보드를 신기하게 들여다보았고, 나중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모야, 우리 이야기도 좀 써줘요."

밝게 웃으며 떼 국물 꾀죄죄한 얼굴을 더러운 손으로 쓱 닦으며 환히 웃는 동네 아이들을 보며 나는 활짝 웃는다.

아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내가 진짜 작가이건 아니건. 이모야와 늘 함께 하는 저 키보드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 안에 자신이 있었으면 하는 그 작은 바람이 전부일뿐. 나는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나 자신이 꽉 차올랐다.


열심히 꾸준히 성실히 이만큼 쓰는 것만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칭찬받지 못한다. 성실함은 고시 대적인 가치관이고 미련한 사람이 되는 요즘 현실이라지만, 그래서 왠지 이렇게나 절실히 쓰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현대사회라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싶고 그렇기에 쓴다. 그리고, 이 키보드는 그런 나를 숨 쉬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나와 함께 여기저기 한 몸으로 붙어 다녔던 무선 키보드는 자꾸만 고장이 났고, 올해 나는 키보드만 세 번째 바꾸었다. 신랑은 그럴 때마다 군말 없이 새로운 키보드를 사주었다.

글을 써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거나 내세울만한 명목을 만들고 싶었던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았지 책을 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저 죽기 직전까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쓰고 싶을 뿐이다.


여행지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놀이터 땅바닥에서도, 나는 쓴다. 이 하얀 키보드와 함께 틈새 글쓰기의 쾌락 안에 포옥 빠져서.

작가의 이전글 지상 낙원에 간 첫 균열, 한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