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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Dec 08. 2022

매일 나는 죽고 살고, 매일 이불을 개고 펴고

마법의 공간, 우리 집

넓게 다 같이 잘 수 있는 공간은 거실뿐이다. 커다란 요 세 장을 깔고, 두꺼워진 이불을 덮으며 옹기종기 모여 끝말잇기와 엉뚱한 이야기들을 한 후 잠이 든다. 식구 모두가 잠이 들면 나는 안방의 침대로 향한다. 거실에는 신랑이 양 옆에 아이들을 두고 잔다. 신랑이 새벽에 출근할 때면 어김없이 작은 아이가 깬다. 아빠가 세수하고 이 닦고 면도하는 것을 빼꼼히 쳐다본 후, 출근하는 아빠를 꼭 안아준다. 안방에서 자던 나는 신랑의 출근 준비 소리에 거실로 나오고 배웅을 마친 작은 아이와 함께 거실 요에 다시 눕는다.

"아빠는 힘들겠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가니까."

작은 아이는 매일 이 말을 하며 다시 자리에 눕는다. 옆에는 큰 아이가 번데기처럼 이불을 둘둘 말고 세상모른 채 콜콜 자고 있다. 가끔씩 바시락 거리는 이불 소리, 아이들의 평화로운 숨소리, 포근하고 잠이 오는 공기 안에서 나도 다시 눈을 감는다.


별 것 아닌 일상에 감사하다. 아이들과 한 공간에 아직까지 모여 함께 잠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 서로의 꿈의 조각조각을 숨소리로, 잠꼬대로, 잠의 움직임으로 느끼며 살을 맞대고 같은 공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에 사무치도록 잡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일, 그저,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요를 이고 지고 펴고 잠을 자는 일.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이 모든 요를 다시 개어 방에 올려두고, 집안의 침대는 자신의 본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장식물이 되었지만, 모두 괜찮다. 매일 밤 이불을 펴고 개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우리 가족 모두가 결국에는 이 한 공간으로 모인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리고, '다시 이곳에 모이지 못하면 어쩌지?'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병원과 집을 오갔던 올해 여름이 스쳐 지나간다. 몸 안 어딘가에 깊숙한 흉터를 남긴 채, 관통해버린 아픈 기억은 이제 조금씩 추억이 될 준비를 한다.


우리 집에는 건조기가 없어 언제나 빨래대에 빨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이들은 말했다.

"이건 빨래 나무에 걸린 빨래 열매를 예쁘게 따서 개는 일이야."

아이들의 아름다운 표현과는 달리, 내게는 빨래 개는 일이 참으로 귀찮은 일이었다. 바쁜 와중에 각을 잡고 개는 여유는 없었기에 급기야 양말은 짝을 맞추지 않은 채 커다란 통에 넣어 신는 사람이 알아서 재미있게 짝꿍을 찾아 신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바쁜 날이면 아이건 어른이건 짝짝이 양말을 신고 가기 일쑤였고, 신을 벗지 않는 곳에서는 잘 모를 일이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인 날이 생기기도 했다.


아이들이 등교, 등원을 마친 후, 빨래를 가만히 개고 있을 무렵, 짝을 하나하나 맞춰 양말을 개었다. 발바닥에 송송 난 보풀을 보며 손바닥보다도 한참 작은 양말에도 보풀이 난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작은 양말의 작은 보풀을 손가락으로 뜯어내며 피식 웃는다.

'얘는 얼마나 발바닥 닳게 돌아다닌 거야?'


신랑의 양말은 죄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해져있다. 구멍 난 것들을 솎아내고 구멍 나기 직전의 양말을 구출한다.

'왼쪽 엄지발가락 발톱이 긴 거야? 발가락이 이상한 거야? 왜 여기만 이러지?'

문득, 이따 퇴근한 신랑의 왼쪽 발을 좀 보여달라 해야겠다며 궁금증이 한껏 생긴다.

아주 작은 것들이다. 보풀과 살짝 해진 부분. 그냥 신속한 일처리에서 보이지 않았던 사실을 보게 되는 순간은 이렇듯 우연찮이 찾아온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새로운 발견의 순간들. 내가 잡은 오늘 이곳에서의 수확.


한 때는 아이들이 집을 나가면 바로 나도 집을 나오곤 했다. 집에 있으면 자꾸만 집안일을 해야 할 것 같았고, 하지 않고 내 일을 하면 직무유기 같았다. 있어도 불편하고 없어도 불편한 곳이 나의 집이었다. 이 공간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는지, 이만치 시간이 흘러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하기 싫던 집안일은 매일 새로운 발견을 주는 소소한 선물이 된다. 노동을 하는 손은 귀하다. 설거지를 하고 걸레를 빠는 손이 아름답다. 나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 반짝이는 집이 좋다. 언제부터인가 집안일에 대한 억울함이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희생이 아닌 사랑. 나의 손길이 닿은 곳, 나의 눈빛이 머문 곳, 이곳은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기에, 내가 이곳을 가꾸기 위해 하는 최소한의 노력 역시 귀하다. 내가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처럼, 나는 나를 살게 하고 식구들을 살게 할 이 공간에 나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기꺼이!


나는 비로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설거지하는 과정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오늘의 행주를 삶은 후, 탈탈탈 털어 너는 일. 그 탈탈탈이 내게 주는 박수 소리 같아졌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루틴이 주는 감사함, 저녁까지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감사함, 따뜻하고 안정된 집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감사함. 집안일을 하며 자꾸만 내 안에 감사함이 쌓여간다. 이 소소한 감사함은 신기하게도 삶의 동력이 된다. 그저 이 순간에 충실할 수 있는 힘, 결과, 성공 등에 상관없이 조용히 성실히 내 할 일을 하는 것.

그리고,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당장 내일 내가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매일 산다. 그리고 매일 밤 나는 죽는다. 나는 매일 이불을 개고, 매일 밤 다시 이불을 편다. 죽음을 기억하고 매 순간 사는 일, 양말에 붙은 보풀 떼기 하나 떼어내듯 보이지 않는 일이지만 똑바로 응시하고 해내는 것. 그 모든 것이 펼쳐지는 마법의 공간은 바로 나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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