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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an 11. 2023

꺼진 줄만 알았던 내 안의 불꽃

계획표 없는 방학, 의미있는 이유

아이를 향한 사랑이 추운 겨울날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모성애를 매일 새롭게 발견했다. 재우고 먹이고 놀아주고 산책하며 아이에게 맞추어 새롭게 맞춰진 나의 일상이 놀라웠다. 아이를 안고 업고 바라보는 세계는 종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아이의 눈이 멈추는 곳에 나의 시선도 머문다. 황금빛 은행잎이 한 줄기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은행잎의 얇은 떨림 그리고 그 미세한 떨림을 좇아 반짝이던 아이의 영롱한 눈동자.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 아이가 잠을 자면  수백 장 남긴 사진을 글과 함께 기록했다. 얼핏 보면 동일해 보이는 사진이나 내게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작은 방향차이까지 감지될 정도로 모두 다른 사진이었다. 분단위, 아니 초단위로 쓰이던 하루하루였다.


장작이 수명을 다한 때는 첫 아이가 막 여덟 살이 되던 해였다. 공교롭게 때는 코로나가 창궐하여 가정에서 아이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던 해였다.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던 지난날과 달리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아이의 자기 주도적이고 확실한 취향의 성격이 내게는 똥고집으로 비추어졌다. 자꾸만 내 안의 화를 불러냈다. 참고 이해하고자 애쓰다 나도 모르게 경계의 문턱까지 다가갔다. 글쓰기를 핑계 삼아 멈추지 않으면 금세라도 추락할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매일 펼쳐졌다. 아이도 나도 그저 하루를 견뎌냈다. 부글부글 끓는 것은 아이나 나나 매한가지. 모든 기질에서 정확히 정 반대를 가리키고 있는 나의 아이를 내가 낳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이토록이나 자신의 아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었다. 아이를 향해 지글지글 타올랐던 환한 사랑은 어디 갔을까? 아이를 향해 환히 타오르는 불꽃은 사랑의 꽃이 아닌 오장육부를 태우는 화였으니.


한 아이는 나를 너무나 닮아 시시때때로 마음이 아팠고, 한 아이는 나를 단 하나도 닮지 않아 시시때때로 화가 치밀었다. 이런 유치한 나의 마음을 인정할 수 없어 발버둥 쳤다. 감동하고 감응하는 삶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이었는데, 당장의 내 자식에게 감동하고 감응할 수 없어, 아니, 최소한의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나는 눈물이 났다. 눈물은 이내 울음이 되었다.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정히 친구처럼 지내는 모녀를 바라보며, 아이와 알콩달콩 소꿉놀이하듯 하루를 살아가는 sns의 글들을 보며, 울음은 신음처럼 터져 나왔다. 울음이 잠시나마 나와 아이의 삶이 버겁고 벅참을 잊기라도 해주는 것처럼 울고 또 울었다. 어쩌면 그리움일까? 내가 아이를 만나며 반짝이는 눈동자를 좇아 온 힘을 다해 사랑하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 어쩌면 자괴감일까?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나와 다름을 나와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생각 패턴에 대한 괴로움.


해가 바뀌었다. 아이를 기껏 보듬어 안고 키울 날이 십 년 밖에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새해, 남들이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방학 시간표를 짜며 습관을 잡을 때, 나는 아이가 방학을 좀 더 여유롭게 보냈으면 했다. 자신의 생체리듬을 존중해주고 하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사용했으면 했다. 학습을 위한 습관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보다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알아채고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었으면 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하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사랑을 그런 형식을 이용해 풀어보기로 했다.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나 스스로가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조금 더 잘 살고 싶어졌다.

자주 하지는 않지만 종종 보이는 sns 속의 아이들의 공부 인증과 독서 인증 대신, 나는 아이의 <성장 인증>을 하려 한다. 빈 노트를 성장노트라고 이름 붙이고 매일 아이들의 칭찬거리를 적었다. 하루하루 칭찬이 쌓일 때마다 달력 속 나란히 붙어있는 숫자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름답게 빛나는 아이의 날들.

내가 그토록 불만스러웠던 나와 다른 아이의 하루에는 이토록 많은 칭찬들이 담겨있었다. 내가 보았던 시선이 얼마나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지 새삼 깨닫는다. 알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가시적으로 그것도 나의 손글씨로 쏟아지듯 보이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소하고 미미한 날이지만, 아이의 매일 성장이 담긴 이 날들을 유산으로 간직하며 긴 육아를 이겨내려 한다. 우리의 계획표 없는 방학. 대신 칭찬과 성장이 쌓이는 방학을 응원한다. 그리고, 아이가 아이 자신으로 살고 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내 안에 꺼진 줄만 알았던 아이를 향한 사랑의 불꽃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마음이 훈훈해진다. 깊고 환한 미소가 번진다.

매일의 칭찬노트
아이들의 장점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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