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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an 12. 2023

소박하지만 빛나는 날들

호시절


나는 호시절을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든 그 안에 숨어져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에 감동한다. 겉보기에 무엇하나 변한 것이 없는 삶이지만, 분명 나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이 되었다. 마음가짐 하나가 가져다준 거대한 변화. 새로 펼쳐진 이 세상이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아 계속해서 꿈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둘째 아이가 네 살 즈음되었을 무렵,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에 정신을 빼앗겼다. 나뭇잎 하나가 반짝일 때마다 고사리 손을 뻗어 주웠다. 행여 찢어지기라도 할까 소중히 잡아 옮기던 동심이 집에 왔다. 햇살이 사라진 밤, 형광등 불빛에서 본 나뭇잎은 낮에 본 반짝임이 사라진채 히마리 없이 식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더 있으면 말라버릴까 두려워 코팅을 하였다. 어린 시절 만든 나뭇잎 책갈피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의 나뭇잎은 영원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따스한 햇살이 담겨있다. 나는 안다.  이 따스한 햇살은 나의 무덤까지 따라갈 것을.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라도 아름다움은 그 자리에 스러지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라고.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

귀가 닳도록 들어오던 이 말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사십여 년을 살았다. 안온한 알 속에 들어있으면서 알 밖의 세상을 동경하면서, 막상 나의 힘으로 알을 깨고 나갈 용기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선을 그었다. 여기는 내 세상, 나는 원래 이렇게 구질구질해. 저기는 다른 세상, 나는 저곳에 속하지 않아.

타의로 산산이 부서진 알을 보고도, 하늘이 뻥 뚫려 다른 세상의 공기를 마시면서도 자꾸만 남아있는 알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산화된 알 껍질의 고약한 냄새를 맡으면서도 여기가 내가 속할 곳이라며 울며 기어들어갔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도 되는데 그러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그 한 숨이 두려웠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 고개를 쳐든 순간 보이는 것은 맑은 하늘. 그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 하늘을 세상 삼아 날아가는 새 한 마리. 그리고 그 모든 걸 배경 삼아 새빨간 단풍잎 하나가 바람결에 팔랑이며 내게 떨어졌다. 발찍한  가을 향기가 전해졌다. 오래전, 아이가 내게 준 햇살을 가득 머금은 나뭇잎이. 내가 담은 그 햇살이 아직 나의 마음 안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많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언젠가 이 세상에 사라진다 해도 그들이 내게 전해주었던 그 햇살 한 조각만큼은 나의 무덤까지 따라갈 것임을, 깜깜하고 어두운 무덤 안을 환히 밝힐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 그들을 그리워할 것임을 안다. 아프고 또 아파할 것임을 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순간에도 내게는 그들과 함께한 아름다움이 남아있을 것임을 안다. 그러니 되었다. 나는 그저 지금을 산다. 후회하지 않게 사랑하고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그동안 필요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게 필요한 것들에 더 많이 집중하고 애를 써서 다정하게, 사랑을 채우며 살고 싶다. 소박하지만 빛나는 날들, 그것이 나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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