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 가
아빠들과 아이들의 하룻밤을 응원하며
"주말에 내가 아이들 데리고 1박 2일 펜션에 놀러 갈게."
신랑이 말했다.
신랑에게는 돈독한 고등학교 친구들 무리가 있다. 신랑과 스무 살에 만난 내게 그들은 마치 나의 친구같기도 하다. 우리는 대학시절 함께 엠티를 갔고 함께 술을 마셨고 함께 놀았다. 결혼 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모임을 가졌고 각자의 집에 놀러 갔으며 가족단위로 엠티를 가곤 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이런 데서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할 정도로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비슷한 터울로 아이를 낳았다. 2세들의 성별이 골고루 섞여있으며 아이가 셋인 집이 두 집, 나머지는 모두 둘인 집의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일을 벌였다.
와이프를 집에 둔 채 아빠들끼리만 아이들을 데리고 1박 2일간의 자체 '아빠 어디 가'를 기획한 것이다. 조용히 곁에서 준비과정을 엿보니, 단연코 더욱 신이 난 것은 아빠들이었다. 야광 팔찌, 보물찾기, 폭죽, 족구, 축구, 온갖 게임을 준비하고 엑셀로 만든 공통준비물이 배부되는가 싶더니, 집 앞으로 아이들 상품과 관련한 택배가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신랑에게 배부된 준비물은 고기 불판, 가스, 식용유, 쌈장, 소금 등이다. 대충 알아서 치킨과 피자로 때운다던 사람들이 일을 점점 벌인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놀러 간다는 사실에 엄마가 함께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는지 몰랐다. 차에 타는 순간 엄마의 빈자리를 발견한 녀석들은 끝내 엄마도 데려가자며 울었다.
“엄마 혼자 집에서 자는 것이 너무 불쌍해.”
이것이 이유였는데, 울며 떠나는 세 명의 이 씨들을 나는 아주 커다란 손짓으로 배웅했다. 자꾸만 번져 나오는 미소를 막을 수가 없었다.
돌아온 텅 빈 집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평상시 그렇게도 미루던 청소부터 했다. 깨끗하게 설거지까지 끝내 놓은 후, 드디어 식탁을 책상 삼아 앉았다. '실컷 읽고 실컷 써야지.' 가슴이 설레서 무엇 보터 해야 할지 번잡해진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 싶다가도 그들이라면 이런 일을 벌일 줄 알았다 싶다. 그 많은 인원이 오랜 시간 겪어낸 숱한 우정 속에서, 나는 그저 함께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으로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할 뿐이다.
오랜 시간 변치 않은 무언가가 가져다주는 감동. 신랑과 함께 한 23년의 시간, 내가 보아온 그들은 늘 내가 모르는 신랑의 한 부분을 꺼내주곤 하였다. 정확히 형용할 수 없는 그것들은 이런 것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아끼는 남자들의 우정 같은 것. 친구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책임 같은 것. 나는 모르는 그 세계의 깊이를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스무 살의 앳된 학생들은 이제 모두 마흔셋이 되었다. 엔지니어, 금융권종사자, 의사, 조종사. 사회의 제각기에 흩어진 그들이 오늘 한자리에 모인다. 자신을 꼭 닮은 아이들을 데리고, 그 시절 그들이 즐기던 놀이를 가지고, 고생한 와이프들에게 1박 2일의 자유시간을 선물한 채 함께할 그들의 시간을 상상한다.
까똑.
신랑에게서 사진 네 장이 왔다.
'와. 유전자 진짜!무섭네. 누구 앤지 말 안 해도 알겠네.'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 거리며 웃는다. 코로나로 못 만난 몇 년 사이 훌쩍 큰 아이들이라지만, 누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알겠는 이 상황에 기어코 웃음이 터진다. 역시나 쑥스러움 가득한 우리 둘째는 사진 앵글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고, 첫째는 덥다며 겉옷까지 벗어재낀 채 반팔채로 신나게 놀고 있다. 아마도 둘째는 아빠 껌딱지가 되어 낯가림이 풀릴 때까지, 아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겠구나.
진, 현, 정, 웅, 윤, 그리고 신랑아. 이런 멋진 날을 선물해 주어 고맙다. 오래도록 보아온 너희들의 우정이 나이가 듦과 함께 깊어짐을 곁에서 볼 수 있어 참 감사해. 오늘 하루 아빠들과 아이들의 행복한 하룻밤이 부디 안전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마무리되길 바라며, 귀하게 받은 이 시간을 온 힘 다해 누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