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깨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이 다시금 자연스럽게 느껴진 무렵, 두통은 다시 시작되었다. 6월의 그날을 되돌리는 것처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얼굴은 있는 힘껏 찡그린 채 아이는 웅크려있었다.
쿵.
더 이상 내려앉을 힘도 없을 심장이 내려앉는다.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안 돼. 내가 더 겁을 먹으면 안돼. 나는 강해. 강하다면 강한 거야. 강해야만 하는 거야. 주문을 건다. 빨라지는 심장박동수와 흐려지는 눈앞을 다스리며, 아이에게 다가가 증상을 물어보고 안정을 시킨다.
한 달 반 전에 한 커다란 수술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장이라도 응급실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누른다. 그 이후의 프로세스가 너무나 눈에 훤하다. 내 눈에 뿐만 아니라 아이의 눈에도 훤한 고생길은 우리 모두를 얼어붙게 만든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픈 아이 곁에 있어주는 것 말고 아무것도 없는 무력한 상황. 부디 이 아픔이 지난번과 같은 양상이 아니기를, 지나가는 여정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할 뿐이다.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무릎을 꿇는다. 한때마나 아이가 건강히 즐거이 뛰어놀아 오만해졌던 마음, 나의 생이 원래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을 버린다. 나도 꿈을 꾸고 싶다며 노트북을 펼쳐 힘껏 글을 썼던 마음마저도 한 끗의 망설임 없이 버린다. 모든 것이 사치다. 그건 아이가 언제든 아프지 않을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들, 일상의 소중함을 잠시나마 당연함으로 여겼던 내가 받는 벌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다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면 나는 되었다. 꿈이야 나중에 다시 꾸면 된다. 글보다 삶이 먼저다. 지금 아웅다웅하며 조금이라도 매만지고 싶었던 나의 삶의 한가닥이 한없이 사치가 되는 순간, 다시금 삶은 내게 가르쳐준다. 삶이 먼저라고.
아이의 곁에서 밤새 묵주를 굴린다. 간절한 마음이 반드시 가 닿아 아이가 이 시기 역시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고 또 믿는다. 아이의 표정이 미세하게 찡끗할 때마다 혹여나 아픈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지금 이 순간 내가 아이의 곁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삶이 내게 해주는 경고, 너 정신 차려. 소중한 것들을 지켜. 그것이 우선이야. 나는 가만히 삶이 내게 해주는 말들을 듣는다. 순종할 뿐이다.
토양 깊은 곳에 숨어있는 씨앗이 아무리 나오고 싶어 발버둥을 쳐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듯이, 자연이 해주는 말에 순응하며 기다리는 땅속의 씨앗이 되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