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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an 23. 2023

호강에 겨운 계집의 손

엄마 손은 약손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백정 출신 구동매가 애신 아기씨에게 했던 강렬한 한마디가 가슴을 관통했다. 마음 안에서 빠지지 않고 깊숙이 파고들었던 이 대사는 어쩌면 나를 향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씨로 편하게 사랑받으며 살 수 있었음에도 조국을 위해 택한 애신의 선택, 숱한 희생과 도전, 아픔과 간절한 희망, 그리고 국가차원의 대의는 이 대사 하나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녀는 그래봤자 고작 양반 출신의 귀한 계집일 뿐. 구동매의 목숨을 구해주던 그 순간까지도 구동매에게 그녀는 그저 호강에 겨운 계집이었을 뿐이다.


살면서 이해받지 못한다 생각했던 날들이 태반이었다. 구구절절 세상에 대고 외쳐봤자 세상에게는 그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소리였고, 나는 그저 호강에 겨운 계집일 뿐이었으니까. 오해받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겉보기만으로 얼마든지 위장 가능한 것이 우리네 삶이었으니까. 누구든 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이상 알 길 없는 물 속이었으니까.

"너 보다 더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맞는 말이다. 나는 나의 호강에 감사했다. 그래서 더욱 겸손히 살고자 애를 썼다.  타고난 예민함은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타고난 것이다. 가슴에 한번 담아두면 흐릿해지기는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형벌을 받은 채 살아간다. 상대의 눈동자 속의 섬세한 감정 한 줄기가 제발 내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무디게 몰랐으면, 아니 알더라도 모른 척할 베짱이라도 있었으면 바랐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던져 죽는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돌에 맞아 회복되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할 개구리가 가워웠다. 차라리 그 돌에 맞아 죽어버리지. 그러면 편할 텐데...


사후를 생각하면 미소가 번졌다. 몸에 갇혀 받아야 할 모든 감정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진정한 해방이다. 진정한 축복이다. 피할 수도 돌파할 수도 없는 삶의 늪에서 나를 건져줄 유일한 동아줄. 죽음은 그러했다. 단지, 이 생에서 나의 삶에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되어 존재한 숱한 그리운 존재들이 더없이 그리울 것을 안다는 두려움이 클 뿐. 그립기에 지금이 더 애틋함을 역설적으로 알 뿐.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호강에 겨운 계집 따위였던 나는,그동안 내가 결핍이라 생각한 숱한 감정 따위가 얼마나 호강에 겨웠는지 깨닫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면서 한 번도 내게 일어날 것이라 생각지 않은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바라본다. 속수무책으로 눈을 비비고 살을 꼬집어보아도 현실임을 깨닫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무력함의 끝이 어디인지 두 눈 부릅뜨고 마주한다.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것은 진정 호강에 겨운 삶이었다. 그런 복을 복인지 모른 채, 징징이며 살아온 벌이다.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앗아가지 말아 달라며 애원하며 가장 낮은 곳으로 간다. 꿈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소중한 삶의 일부가 사라진 이후에는. 내가 숨 쉴 수 있었고 즐길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버린다. 혹, 그러면 내게서 더 이상 앗아갈 것이 없지 않을까.


자기 검열 따위를 하기엔 너무나 나이가 많았고 구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을 반복적으로 깨닫는다. 끔찍한 고문이다. 내게는 의학적 지식도 없어  단단한 뚝심도 없어 강단 있게 이겨낼 자신도 없다.두려움 앞에 그저 한없이 무너져 애원하고 비는 나의 모습은 어느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의 형상이었다. 두려움에 아픔에 고통받는 아이 앞에서 더 큰 두려움에 벌벌 떠는 어미의 형상, 아이가 끝내 던지는 말이 너무 슬퍼 차라리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내가 다른 엄마였으면 했다.

 '엄마 울지 마. 엄마가 울면 내가 너무 슬퍼.'

아이의 슬픈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떠날 수 없다면, 어떤 형태로든 나는 나의 소중한 것들을 보듬고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가장 아래에서 겸손하게,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내게 던져진 돌을 맞는다. 찢겨나가고 부러지더라도 묵묵히 견디며 삶을 버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사랑이 건너간 곳에 남을 흔적을 믿으면서. 부디,  내가 받은 이 벌이 나의 대에서 모두 다해 아이들에게만큼은 건너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좋은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간다.


호강에 겨운 계집의 손이 엄마의 손이 되어, 기적을 바라 담으면서.


<엄마 손: 2023. 1.20>


너는 말했지.

"엄마 손은 마술사의 손이야."

멋진 요리를 만들어낸다며 신기해했어.

너는 말했지.

"엄마 손은 신기한 손이야."

색종이를 요리조리 접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손을 닮고 싶어 했어.


엄마는 정말로 엄마 손이 마법의 손이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정말로 엄마 손이 신비한 손이면 좋겠어. 이 손이 너의 이마를 지나가면 이마가 낫고, 이 손이 머리를 지나가면 머리가 나았으면...

이 손에는 온기와 사랑은 존재하지만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력해서, 엄마는 자꾸만 눈물이 나. 엄마 손이 마술을 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도록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얼굴 표면을 뚫고 나올 때, 뜨거운 그 눈물길이 낸 피부의 상처를 느껴. 참고 참다 터져버린 눈물을 기어이 삼킨 눈물 맛에는 피비린내가 나. 눈물길 그 어디에도 혈관과 연결된 곳이 없는데 삼킨 눈물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어.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영이 있다면 잠시나마 엄마손에 머물고 가길 바라며 손을 모아 기도를 해. 혹시나마 그런 기운이 네게 닿아 너를 낫게 할까, 삼킨 눈물과 폭발한 눈물을 모아 다시 너를 쓰다듬어. 진짜 마법사라도 되느냐, 간절한 마음이 닿으면 혹시나 인간의 이치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면서 말이야.


정말로 엄마손이 마법의 손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걱정하고 슬퍼한다며 아프다 말하지 못한 채 온 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너의 그 마음을 안아주고 어루만져주고 싶은데... 왜 아픈지도 모른 채 고통을 견디는 너의 작은 몸을 구해주고 싶은데... 엄마손이 마법의 손이라면 너를 구해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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