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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an 27. 2023

아름다운 마음

모두의 아이가 나의 아이가 되는 순간


밤 사이 눈이 하얗게 쌓였다. 온 세상의 작은 떼마저 덮어버린 하얀 세상을 만난 아이들은 신이 났다. 놀이터에는 이미 대여섯의 사내아이들이 모여있다. 축구공 하나 들고 눈밭 축구를 시작했다. 미끄러질 때마다 사람 드리프팅을 본다. 누가 더 멋들어지게 미끄러지는지를 시합하는 듯, 공을 찰 때마다 신나게 미끄러진다. 아이들의 몸짓을 따라 눈밭의 눈이 신나게 퍼져 날린다. 눈사람 형상을 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한층 커진다. 넘어진 채 하늘을 향해 입을 '아' 벌린 아이들. 하늘에서는 여전히 폴폴 눈이 떨어졌다. 둘째 아이는 연신 말했다.

"엄마, 너무나 재미있어. 형들이랑 한 축구는 정말 최고였어."


 공 하나면 모두가 친구가 되는 세계는 엄마인 내게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세계였다. 내가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이름도 모르고 처음 보아도 공 하나로 화합이 되는 순간은 신기루처럼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곤 했다. 아이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첫 경험' 중 사내아이를 키우며 맞는 '첫'은 단연코 축구로 이어진 아이들의 세계였다.


영하 10도의 강추위도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 앞에서 영 힘을 쓰지 못했다. 커다란 형아들 사이에서 작은 체구로 요리조리 공을 모는 아들을 착한 형들이 살펴주었다. 패스와 슈팅의 기회를 주고 넘어지면 꼭 괜찮은지 물어봐준다. 눈밭 축구의 정점은 단연코 예기치 않은 부딪힘과 미끄러짐 속의 태클이었는데, 아들이 넘어질 때마다 형아들은 물었다.

"괜찮아?"

아들내미가 눈을 탁탁 털고 걷어 차인 정강이를 붙잡으며 일어나서 오케이 사인을 내밀면, 형아들은 말했다.

"아.. 더 아팠으면 페널티킥을 얻어낼 수 있는데 아깝다."


룰이 없어 보이는 동네 놀이터 축구라지만, 아이들 사이에서의 암암리의 규칙이 있었다. 축구를 하다 보면 몸싸움은 피할 수 없다. 몸싸움을 피할 수 없기에 부상이 있을 수 있다. 아픔의 정도가 본인이 느끼기에 너무 심하다 싶으면 반칙인 것이다. 그래서 페널티 킥을 준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의 이런 규칙이 귀엽고 신사답다.

'저 녀석들, 얼마나 멋진 아이들로 자랄까?'

혼자 상상하며 마음이 설레어왔다. 추위로 벌겋게 상기된 아이들의 뺨에 걸린 환한 달덩이 같은 미소가 예뻐서 당장이라도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원래 이토록 어여쁜 존재였던가? 새삼 내게 되물었다.


눈은 계속 하늘에서 쏟아진다. 쏟아지는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시간이 정지한다. 풍경도 정지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이 귓가에 메아리치며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아이들은 힘든지 이내 누워서 축구를 한다. 하다 힘들면 입을 벌려 눈을 받아먹는다. 옷은 땀인지 눈인지 축축할 뿐. 빨갛게 부푼 뺨은 아랑곳 않고 행복에 겹다.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천국이 있다면 흡사 이런 형태일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이날, 윗집 겸이 형아가 준 떡볶이로 매운 떡볶이에 입문했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한번은 추운 손을 호호 비비고, 다른 한 번은 뜨거운 떡을 호호 불어가며 정신없이 떡볶이를 먹었다. 추운 겨울날 눈밭에서 먹는 컵볶이는 어떤 맛일까? 그 맛을 감히 글로 말로 어찌 풀어낼 수 있기는 한 걸까?


그렇다. 아이들이 눈을 뒹굴며 신나게 노는 것을 말없이 응원하는 이웃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뜨끈한 떡볶이를 종이컵이 나누어 담고, 예쁜 포크에 찍어 쟁반에 담아 나누어주는 사랑. 베이비붐 세대의 유년 시절을 재현해 낸 현재의 이웃에게, 나는 고작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뿐이다. 아무리 세상이 이기적으로 변했다지만 분명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것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의 아이가 결국 모두의 아이이며, 모두의 아이가 결국 나의 아이가 되는 순간, 세상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 위대한 사랑은 결코 일대일 대응이 아님을.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송이처럼 조용히 온 지역을 포근히 덮어낼 엄청난 영향임을. 비록 티 나게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조용한 힘임을 알고 있다. 아이는 이날 겨우 읽고 쓰게 된 서툰 한글로 일기를 썼다. '나는 형들이랑 눈밭에 누워서 눈도 먹고 축구도 했다. 재미있었다.'이 두 줄 속에 오늘의 웃음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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