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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라는 기적

기도

by 고요

햇살로 가득 채워진 성전, 적막한 고요함을 깨는 소리는 새 지저귀는 소리뿐.

조용한 성당에 앉아 오늘 치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를 맞는다.


청원 기도로 시작하고 마쳤던 오랜 세월을 건너, 감사 기도로 시작하는 세월을 맞이했다. 오늘 하루가 주어짐에 감사하는 기도로 시작하고, 그 하루 안에서 하느님을 닮은 모상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청원으로 마무리되는 기도.

포근하게 펼쳐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살그머니 손을 대어 본다. 따뜻한 빛,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하느님을 그렇게 만난다. 지금 내 곁에 있어 만지고 말할 수 있는 존재들, 이 모든 존재들도 시간이 흘러 언젠가 하늘로 돌아갈 테고, 그들이 없을 이 세계는 얼마나 외롭고 그리울까.


"오늘 꿈속에 엄마가 꼭 나왔으면 좋겠어. 엄마, 꿈에서 만나."

하루의 끝,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 아련한 감정과 닮은 그것. 현실 세계가 끝나고 꿈속 세계로 들어가야만 하는 밤에 아이가 한 말을 마음에 담는다.

언젠가, 내가 죽고 없을 세상, 아이는 이런 말을 하고 소망을 하며 잠에 들겠지.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의 세상, 나는 이런 마음으로 매일 밤 잠에 들겠지.


다시 아침이 밝아와 꿈속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와 반가운 얼굴을 만나고 실제로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얼마나 큰 기적인가.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인 "지금, 여기"를 어찌 허투루 쓸 수 있단 말인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마음이 되어 언젠가 이 세상을 마치는 날이 오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소망을 담아 산다. 건강히 함께하는 이 순간을 온전히 맞이하기를 바라면서. 그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이 간절한 소망을 비집고 끼어들 틈이 없다. 그렇게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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