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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채우며

정리 단상

by 고요


아이와 함께 해외 생활을 하며 노숙자를 만날 때면 긴장을 한다. 행여나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뼈 속까지 배인 지린내가 괴로워 보이지 않게 숨을 참으며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무서워" 하고 코를 옷 안으로 집어넣고 종종걸음으로 재빨리 나를 좇아오는 딸과 달리, 아들은 늘 그 구역을 천천히 지나다녔다.

"엄마, 그러지 마. 누나, 그러지 마."

아들은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호소했다.

"그렇게 빨리 가면 저 사람들이 민망할 거야. 너무 불쌍해."

길거리에서 만나는 흔한 홈리스들을 늘 가엽게 여겼다. 그리고 그런 날은 늘 자기 전에 아이는 속삭였다.

"엄마, 나는 집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해. 그리고,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부할 거야. 저 사람들이 집에 들어갈 수 있게."


아들과 함께 시장을 가는 길, 아이의 발걸음은 어느새 붙었다. 자글자글 주름이 가득한 빼빼 마른 할머니 한 분이 야채를 파신다. 허리가 굽을 대로 굽어 자신의 발을 향해 불편한 몸으로 칼을 꼬옥 쥔 채, 열심히 파를 다듬고 계셨다. 아이가 귓속말을 했다.

"엄마, 시장 가지 말고 여기서 그냥 사자."

아이의 발걸음을 붙잡은 이곳.

"쪽파 삼천 원어치 주세요."

할머니는 힘겹게 일어났다. 정말 고꾸라진 등뼈를 해서 조심조심 앞으로 와 쪽파를 비닐봉지에 담는다. 자글자글한 그 손에서, 뼈와 핏줄이 전부 튀어나온 세월과 노동으로 쉬지 않은 시간을 만난다.

"고마워 유."

작은 할머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아들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어린 시절, 친정 엄마는 늘 길바닥의 할머니들에게 야채를 사곤 했다. 일부러 더 많이 산다는 걸 알 나이 무렵, 엄마가 말씀하셨다.

"때로는 마트보다 비쌀 때도 있고, 노점에게 이익을 내주는 것이 형평에 어긋나긴 하지만, 저분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고 싶은 마음에 꼭 발길이 여기로 닿네."

하루의 벌이, 그 정직한 노동 그리고 절박함.

이것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나 알 것 같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오는 길, 아들의 손 등을 어루만진다. 보드랍고 매끈한 아이의 손이 느껴진다. 이 손이 언젠가는 노동으로 인해 울퉁불퉁해지겠지, 귀한 노동으로 아이의 손이 귀하게 쓰이기를 바라며 손을 꼬옥 잡았다. 쪼글쪼글 습자지처럼 구겨진 뼈만 앙상한 야채 할머니의 손이 겹쳐진다.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꾹 참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냉장고에는 쪽파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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