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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Sep 17. 2021

옆집 언니

그동안 언니가 홀로 흘렸을 눈물들을 닦아주며, 언니 고마워!


옆집 언니가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4년 전 처음 이곳에 이사를 오고, 서로 옆집인 것을 알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힘이 되었던 언니!언제나 밝고 씩씩한 옆집 언니에게서는 언니만의 당당한 패션감각만큼, 언니만의 강인한 빛이 느껴졌었다.

어느 날 우연히 언니가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수술받고 항암 하고 해야 해서 당분간 아이들을 할머니가 봐주실 거라고.

나는 감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언니는 너무나 씩씩하게 잘 다녀오겠다고 하시고, 손 한번 번쩍 들어 올리고는 웃으며 떠났고, 그 이후로 여러 번의 항암 씩씩하게 받아냈다.


그 사이 언니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던 세상 예쁜 가발도 선보이고, 언니만의 패션이 녹아져 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톱부터 발톱까지 아름다운 중년의 여인으로 언니는 멋지게 생활하셨다.

오늘은 언니가 드디어 복원 수술을 하던 날.

어제 짐을 싸며 다시 병원으로 가던 언니의 마음이 느껴다.그동안 씩씩하게 이 길을 헤쳐나가며, 언니가 겪어내야만 했을 숱한 감정들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당시 고작 8살, 6살의 꼬맹이들을 곁에 두며 예고치 않게 찾아온 모든 일들을 덤덤하게 걸어가시며 이겨낸 언니! 지금은 11살, 9살이 된 언니의 아이들이 이토록이나 예쁘게 자라 함께 뛰놀며 웃음으로 내가 사는 이곳을 가득 채워주는데. 그러기까지 언니가 삼켜내며 흘렸을 눈물, 언니가 이 악물며 견뎌냈던 마음, 이 모든 것을 나는 옆집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멀지만 가깝게 보아왔다.

너무나 예쁘게 자란 언니의 딸, 아들이 이만치 커서 씩씩하게 엄마 없이도 가방 메고 학교에 잘 가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분명 언니에게는 폭풍과 같은 시기였을텐데.... 그 거센 폭풍을 주변 사람들도 거의 모르게, 잔잔하게, 그러나 깊고 깊게 들어가서 언니는 결국 이겨냈다.

제 아무리 씩씩했다 한들, 언니가 홀로 흘렸을 눈물들, 언니가 홀로 아팠을 마음들, 언니가 홀로 삭혔을 꿈들... 언니가 홀로 마음에 담았을 저 이쁜 아이들이 주르륵 펼쳐져서 눈물이 난다.

시간 동안 언니가 이토록 잘 해내 주어 너무 감사하다고! 언니의 그 강인한 힘과 씩씩한 마음을 정말 존경한다고! 만약, 나였다면, 정말 어떻게 그 시기를 견뎠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는데, 언니의 삶이 나에게도 살아갈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고백해도 되겠지.

딸아이가 어제 놀이터에서 빈이 언니를 만나더니 사색이 돼서 이야기한다. 아주 작은 소리로, 토끼만 한 눈을 해서는..

"엄마, 빈이 언니네 이모야, 암에 걸려서 수술하러 내일 병원 간대. 엄마 알고 있었어? 어떡하지? " 거의 울듯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빈이 언니네 이모야가 잘 이겨내서 건강하게 돌아올 거야.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그랬잖아!" 하고 이야기해주자 아이가 활짝 웃는다.

우리 엄마가 아닌 옆집 이모인데도, 우리 아이의 반응이 이러한데... 자신의 엄마가 수술을 몇 번을 받을 동안, 우리 빈이 남매들이 그 어린 시기에 얼마나 알게 모르게 두렵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쩌릿쩌릿 아파온다.

놀이터에서 놀이도 잘 이끌어내고, 동생들도 참 잘 챙기고, 유연하고 밝고 이쁜 11살 빈이. 까불까불 장난기 빼면 시체인 장난계의 일인자 9살 빈이. 요 녀석들이 이렇게나 밝고 웃음 가득하게 자라준 것이 얼마나 큰 복이고 선물인지! 아이들에게도, 언니에게도 모두 큰 소리로 "고맙다!"하고 외치고 한가득 안아주고 싶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언니는 늘 "밥 먹었어요?"하고 맛있는 음식 하면 한 접시씩 챙겨주곤 했는데, 내일은 우리 빈이 남매들을 위해 분식이라도 좀 두둑이 싸서 간식하라고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면서^^!

앞으로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할 시간은 고작 2년뿐이지만, 그 2년간 좀 더 건강하고 단단해진 멋진 우리 옆집 언니랑 함께 얼굴 맞대고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언니가 입원을 마치고 돌아오면, 정말 너무나 고생 많았다고, 너무 잘 이겨내셨다고, 언니가 좋아하는 핑크 꽃다발 사서 마중 나가야지.

언니가 입원을 마치고 돌아오면, 누구보다 제일 먼저, 씩씩하게 강인하게 언니가 펼쳐낼 언니의 삶을 응원해줘야지.

문득 지난 4년 간이 파노라마같이 지나가며, 병실에 혼자 있을 언니 생각에 잠이 오질 않는다. 우리 언니 장하다! 우리 큰 빈이 작은 빈이도 정말 장하다! 고마워! 잘 이겨내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2021.9.17


언니에게 가장 최근에 전했던 나의 작은 마음, 이 마음이 언니의 카톡에 머무는 동안
나의 카톡에는 언니가 만들어서 직접 전해준 홈메이드 브런치가 전시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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