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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Sep 22. 2021

다시 사진 속에 찍히기까지

41살의 4월!엄마 사람이 다시 사진 속에 등장한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나는 사진에 찍히는 걸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여행길에서도 배경 사진보다는 꼭 나라는 인물이 들어가야 직성이 풀렸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에 나는 나를 꽤나 사랑하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에 내가 찍히지 않은지 9년째! 누군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앵글에서 벗어나고자 기꺼이 피한다. 특별한 날 조차도 사진 속에는 내가 없었으면 했다. 나의 행색이 너무나 초라해서, 나의 초라한 모습이 남는 것이 부끄러워서, 아이들 생일날 조차도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환히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사진사라는 감투를 쓰고 나는 사진 속을 교묘히 피할 수 있었다.


둘째의 생일날! 이날도 예외 없이 나는 사진에 찍히기보다는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을 맡았고, 따뜻한 생일파티의 기억의 한 조각을 사진으로 박제해 남길 수 있음에 뿌듯해하였다. 아이들이 합창을 해가며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있어서 행복해요.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엄마 고맙습니다."


그 순간 문득, 내가 죽고 없을 먼 훗날, 우리 아이들만 덩그러니 남겨질 언젠가의 이 세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남겨진 사진을 꼭 쥐고 어떻게든 그 안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고 싶어 애를 써보지만, 사진 그 어디에서도 나의 모습은 찾을 수 없겠지?


내가 보물같이 손에 쥐고 보는 사진들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 숨 쉰다. 어떤 사진에서는 달콤하고 포근한 아가의 냄새가, 어떤 사진에서는 하하하 웃는 요란하고 시원스러운 첫째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떤 사진에서는 따뜻하게 눈을 맞추며 놀아주는 신랑의 얼굴 속에서 고단한 하루 속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해준 신랑의 마음이 보인다.


이렇듯,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살아 숨 쉬며 남아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살아 숨 쉬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두려워졌다.


아이들이 언젠가 무척이나 그리워할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이 무척이나 느끼고 싶을 지금의 엄마를 찾아가며, 혹여나 언젠가 먼 훗날, 지금의 나를 사진 속에서나마 찾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리워할 그때, 아이들에게 남겨진 나의 형상은 오롯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겠구나. 그리고 그 기억은 얼마나 쉽게 작은 것에도 부풀려지고, 왜곡되는지 나는 안다.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그러해왔으니까.


안 되겠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의 사진을 찍어야겠다. 비록 행색이 초라할지라도. 비록 꾸미지 않은 민낯일지라도. 보정, 어플을 사용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남겨 언젠가 내가 사라지고 없을 먼 미래의 이 세상에서, 홀로 남겨질 우리 아이들이(그때는 어른이겠지.) 언제든 꺼내보고, 마음껏 품고,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게."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지난 9년이란 세월이 아쉽다.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 새삼 야속하다. 더 많이 찍어둘걸.

밤이고 낮이고 자지 못해 수척하지만 속싸개로 꽁꽁 싼 아가 옆에서 미소 짓던 나는 분명 예뻤을 텐데.. 아이들과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무릎이 해져 구멍이 난 바지를 입었지만, 우리만의 멋진 하루를 만들던 나는 분명 싱그러웠을 텐데... 놀이터에서 모두의 엄마가 되어 동네 아이들과 매일같이 축제를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의 나도 분명 따뜻함일 텐데...


늘어나는 주름살, 희끗해져 가는 머리, 당최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조차 모를 정도로 감을 잃어버린 육아만 오래 해온 시간들 속에서, 내가 피하고자 노력해왔던 것들이, 결국에는 우리 아이들이 훗날 너무나 찾고 싶어 하던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존재는 빛났는데, 비록 내 성에 차진 않지만, 아이들에게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전혀 사랑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는데...... 사진으로조차 한 번을 찍어주지 못한 나의 9년이 눈물겨워서, 사진을 찍어본다.


셀카라는 것이 어색하지만. 화장도 하나도 안 하고, 동네 차림 그대로, 남겨질 나를 생각하며, 환한 봄 햇살 조명 아래 어색하게 지금 이 순간을 남겨본다.


2021년 4월. 41살의 나!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나! 스무 살의 우리가 그저 사랑 하나만으로 긴 연애를 뚫고 가족이 된, 신랑, 그대에게는 언제나 첫사랑인 나! 우리 엄마 아빠에게 단 하나뿐인, 사랑을 퍼주고 더 주어도, 더 주고 싶었던 하나뿐인 딸인 나!


하나, 둘, 셋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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