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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Sep 23. 2021

괜찮아.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돼.

여섯 살 네가 외친 "엄마, 나는 내가 싫어!"

자기 전, 둘째와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는 내가 싫어!"

둘째가 느닷없이 말한다.

"아니, 왜 우리 호가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우리 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데!"

하고 말하자, 둘째가 주저주저하면서 말을 잇는다.

"나는.. 맨날 유치원에 갈 때, 울잖아."


둘째는 한국 나이 네 살에 처음으로 원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네 살 때도 1년 내내 울며 원에 갔고, 다섯 살 때도 1년 내내 울면서 원에 갔다. 물론, 당시 코로나로 인해 등교 중지가 잦아서 더 적응하기 힘든 영향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 나이로 여섯 살이 되었고, 자기도 형님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 형님반에 가도,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그럼. 씩씩하게 안 울고 가면 더 좋지만, 눈물이 나오면 울어도 돼."

"울어도 괜찮아?"

"응. 선생님이 그만 울어~할 순 있지만, 마음이 슬픈 걸 어떡하겠어. 하지만, 엄마 생각엔 우리 호가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 근데, 호야, 왜 자꾸 우는 것 같아?"

"엄마가 안 보이면,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 엄마가 데리러 오는 거 알면서도, 엄마랑 헤어질 때는, 자꾸만 눈물이 나와."


그렇구나! 그래서, 아이가 늘 유치원에 가는 길에, 자기가 울어도 되냐고 물었었구나. 자기가 생각해도 자꾸 매일같이 눈물이 나오는데, 그걸 멈출 수는 없고, 그 상황이 힘들었겠다 싶다. 2년 내내, 매일 아침, 울면서 원에 가는 아이를 보는 나의 심정도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다. 감사하게도 아이 좋은 담임선생님들을 만났고, 모두가 사랑으로 돌봐주고 계셨지만, 유독 등원 길에눈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가곤 했다.


철저히 전적으로 나의 의지로 원해서 하게 된 가정 육아지만 아이는 실로 만으로 3년을 꽉 채운 가정 육아, 장장 거의 2년에 가까운 모유수유, 그나마도 완모/직수라는 말로 통하던 초강력 모유수유의 수혜자였다. 보통은 그렇다 하면, 처음 원에 갈 때 엄마와의 애착이 좋아, 분리불안 없이 쿨하게 원생활을 잘한다고 숱하게 쓰여 있던 육아서들을 분명 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는 2년 내내 울었다. 안 운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그리고, 여섯 살이 되어 형님반으로 가게 된 지금, 아이 스스로가 걱정을 한다. 자기는 자기가 싫다 라는 말을 하며 유치원에 갈 때 자꾸 눈물이 나와서  그런 자기가 싫다고 하면서. 엄마랑 헤어지는 그 순간에 자기도 왜 자꾸 눈물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데리러 올 거란 걸 알면서도, 헤어짐의 순간은 늘 슬픈 우리 둘째.


나 역시 창피한 마음에 굳이 열어보지 않고, 깊이 묻어두었지만, 이상하게도 극기훈련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마지막 날이 오기를 그리도 기다렸었다.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는 것과 별도로, 이상하게 집을 떠나면 그렇게도 가족들이 그리웠다. 성인이 다 돼서 뒤늦게 유학을 떠날 때도, 얼마 안 있어 만날 거란 걸 알지만 떠날 그 당시 출국장 문이 닫히고 나면, 이상하게 폭포수같이 눈물이 나오곤 했다. 누가 보면, 정말 영원한 이별을 한 것처럼 오해할 만큼, 이상하게 그 출국장 문이 닫히는 그 순간만큼은, 나중에 우리가 다시 본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 둘째도 비슷한 기분이겠지? 불과 몇 시간만 지나면 만나게 될 우리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헤어짐의 순간은 늘 애틋하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 그리고, 어린 마음에 그게 눈물로 표현되는 게 아니었을까..


아이가 자꾸 울면, 육아서에서는 늘 이야기한다. 애착이 문제라고.. 그 말이 내게는 가시 같았다. 기질 따라, 상황 따라, 아이 따라 모두가 다른 것! 어떤 아이는 유독 느리고 오래 걸리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첫째 하나만 키웠다면, 그 육아서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동일하게 첫째도 만으로 3년을 가득 채워 가정 육아하고 4살에 원에 갔고, 모유수유의 기간은 둘째보다 짧았지만, 더 집중된 사랑을 받았음은 확실하니.


기질이 다른 아이들을 보며, 조금은 초조함을 내려놓고, 한참이 걸려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고,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보고, 다스려도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밤이다.


여섯 살이 되어서도, 등원을 할 때, 아이는 울 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달려올 테지.....아이에게울고 싶을 때, 울어도 된다고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중에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숱한 날들이 기다릴 테니......이미, 아이가 지금 느끼듯 울면 안 될 것 같은 그 마음들을 아이 스스로가 알아챌 날이 많아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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