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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Oct 26. 2021

결국 우리가 기억해내는 것은 점수가 아닌 노력

엄마, 나 이번에는 65점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아!


초등학교 2학년 첫째는 수학을 현행을 겨우 따라가고 있다. 아이는 벌써부터 문과의 성향이 짙어서 글쓰기와 독서, 국어와 영어를 몹시 좋아하지만, 수 개념이 많이 약하고 수학은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벌써부터 자의든 타의든 박혀있는지라 수학을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어린 시절, 수학이 내게 주었던 열등감과 패배감. 그것을 평생 떨치지 못한 채, 엄마가 되어버린 나에게도 어린 나의 딸의 수학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은 엄청난 내면 아이를 불러일으킨다.


유독 수 감각이 약한 아이에게, 코로나라는 시기는 정말 설상가상으로, 학교 등교를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입학식도 없었던 작년, 코로나로 인하여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 채 1학년을 통째로 날려버렸기에, 1학년 수학은 대부분 one-way로 진행되는 ebs plus 2 채널을 시청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어 만나는 수학! 이것이 아이에게는 실제 수학이라는 과목을 만나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에서 수학을 담당해주신 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이 아닌 수석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수석 선생님 스타일과 맞지 않아 아이는 어려움과 도전의 두려움을 느꼈다. 수석 선생님께서는 늘 "다 맞은 사람?" 하고 다 맞은 사람을 모두 앞에서 지목하고 작은 캔디 등을 포상으로 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완벽주의 기질이 좀 있는 아이인 데다가 수학 수석 선생님의 티칭 스타일에서, 아이는 늘 "도전"을 하는 것이 상당히 두렵고 매번 문제를 풀기 전에 "혹시라도 틀리면? 어쩌지?"하고 묻는다. 틀려도 괜찮다고 2천 번은 말했지만, 아이는 틀리면 수석 선생님께 마이쭈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게, 아이가 자신의 태도를 극복하는 지금의 과정에서 보람과 공부의 본질을 아이 스스로가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아이는 일단, 선행은 힘들다. 현행을 아주아주 간신히 따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선행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워낙 많아서, 아이들 친구들이 "나는 곱셈 9단도 한다?" 하고 말할 때, 교과서 위주의 현행만 하는 딸아이가 한없이 쭈그러드는 것도 사실이고, 주변에 주산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서, "나는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다?"하고 친구들이 엄청난 연산 문제를 적고 푸는 것을 보여줄 때, "우와. 너는 정말 어려운 걸 하는구나."하고 자신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느끼며 작아졌던 아이였다.


내게는 두 가지 이슈가 있었다. 첫째는, 아이가 다른 친구들의 선행에 크게 동요되지 않고, 현행을 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고 값지다는 것을 인지하게 가르치는 것! 둘째는, 1학년을 코로나로 날린 현재 유치원생 같은 2학년에게 (가뜩이나 혁신학교라 시험도 별로 없고) 수학 문제를 풀 때 "시간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좀 인지시켜, 시간 내에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성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애는 애! 나는 나!"라고 경계를 긋고, 아이가 교과를 따라가던 말던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니 공부지 내 공부냐!" 싶다가, 그래도 이제 고작 2학년은 데 그러기에는 코로나라는 특성상 날려버린 1년이 컸고, 지금 이 때는 어른의 도움 없이 애는 애, 나는 나가 되지 않을 아이의 나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할 수 있는 데 까지, 수포자가 되지 않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이가 처음 본 단원평가에서 65점을 받아왔다. 본인이 점수를 보기 이전에 느꼈는지, 그날 집에 와서 "엄마, 문제를 많이 못 풀었는데 선생님이 걷어가셨어." 하고 걱정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었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라고 하니,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결국 다 풀었고, 다 맞았었다. 시간제한이라는 개념을 코로나로 잃어버린 지난 1학년 동안 전혀 배우지 못한 아이의 대가가 이렇게나 컸다.


시중에는 문제집이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았다. 우리 어린 시절에 풀던, 교학사, 해법, 신사고 등부 터해서 처음 들어보는 요즘 출판사까지, 정말 그 종류가 어마어마해서, 어느 문제집을 선택해야 하고 뭘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채, 1학년 때 한번 보아 익숙한 EBS만점 왕을 데리고 왔다. 문제집의 구성이 심화 부분이 많지 않고, 정말 딱 개념과 기본 위주로 단단하게 "현행을 잡아줄 수 있게"되어있어서 지금 우리 아이의 공부 목표에 적합할 것 같아 보였다. 심화니, 응용이니, 하는 것들까지 가기 이전에, 워낙에 수 개념이 좀 없고, 현행을 겨우 따라가는 녀석에게 현재 하는 것들을 기본적으로 좀 다져줄 수 있기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만점 왕은 문제집 안에 작은 시책으로 실전 책과 해설 책이 따로 있다. 먼저 본 책을 푼 후에, 실전 책에 있는 "학교 시험 대비 실전 문제"를 풀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워낙 문제풀이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제한"이라는 개념을 좀 심어주고, 조금 문제라는 것에 익숙하게 해 주기 위해 추가로 다른 문제집 한 권을 이번에 넣었다.


2학년이라는 학년의 특성상, 아직 문제풀이식 수학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1학년 내내 수학익힘책을 제외한 다른 수학 문제집을 풀지 않았었고, 개념 위주의 복습만 해왔다. 물론 기본적인 연산은 했지만, 그 외의 다른 수학의 영역 (워낙에 이런 아이 교육에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고력이라던가 팩토라던가, 도형이라던가 뭐가 많다.)은 건들지도 않았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문제풀이식을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본질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이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혁신학교이고, 정기적인 시험의 형태를 띤 제도가 좀 우리 때와는 다른데, 수학은 하나가 구멍이 나면 뒤에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기 때문에, 앞으로의 수학에 문제가 클 것 같아서, 어찌 되었든 현재 (이미 많이 뒤처지고, 어려워하는 아이다.) 현행을 잡아주긴 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문제풀이를 좀 역으로 활용하여, "개념"을 잘 아는지 모르는지를 판단하는 툴로 이용해볼까 하는 방식으로 코칭을 해 주고 있다.


아이가 문제를 푼다. -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을 안다. - 채점을 하고 틀린 문제를 다시 본다. - 문제를 다시 풀고, 본인이 설명을 해줌으로써 잘 알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과정이 사실 전부인데, 개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맞지만,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서 문제집을 좀 활용해보는 것이 될 것 같다. 때마침, 아이의 학급에서 확진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매일 밤 식탁으로 모여 수학을 풀었다. 첫째가 수학을 풀고 있으면, 둘째는 자기도 무언가 하고 싶다 하여, "점 잇기", "미로", "색칠하기" 등을 갖다 주었고, 아이들 옆에서 우리 부부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


그렇게 풀어도, 그렇게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신랑도, 나도 눈앞에서 보게 되었다. "아! 이렇게나 해도 아직도 모를 수가 있구나!" 때때로는 아이가 지레 겁을 먹어 무조건 먼저 외치는 "어려울 거 같아. 몰라"라는 말에 현혹되어 실제로 아이가 알고 있는 것임에도 못하는 것인지, 정말 어려워서 못하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을 꾸준히, 격려해주며, 응원해주며, 아주 작은 자기 효능감을 얻어가길 바라며, 함께 했다.


아이가 처음 본시험에서 받은 65라는 숫자에 그 점수에 아이 본인도 놀라서, 가뜩이나 움츠러든 수학 마음이 더 움츠러들어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 되어버렸다. "점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우는 더 많은 것들이 나중에 네가 살아갈 삶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이야기해줄 수밖에 없는 거지 같은 수학 머리 소유자의 엄마는 마음 한 구석이 쩌릿온다.


정말 그러하다. 수학이 암기과목이었던 나 같은 거지 같은 수학 머리의 소유자는, 그런데 또 거지 같은 수학 머리와 수학 센스의 소유자임에도 또 어찌어찌 교과과정은 잘 따라가서 시험 점수는 또 잘 받아왔다. 그런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몇 점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잘 따라갈 수 있었기에 그마저도 이과에 가서 "암기"로 모든 수학을 다 역으로 외워서 응용했던 나로서는, 내가 수학을 69점을 받았는지, 96점을 받았는지 그 점수가 기억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점수를 받기 위하여, 안 되는 수학 머리로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고, 싫어 죽겠는 그 망할 과목을 잡고 희로애락을 함께한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끈기와 의지와 요령과 깨달음 등이 지금 와서 살아가는데 아직까지 기억이 남는 것이겠지!


최소한의 끈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의 것들을 해낼 수 있게끔만! 그게 어쩌면 내가 바라는 아이의 목표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공부는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것이고, 그것을 그저 먼발치에서 응원해주며, 이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얻어갈 많은 자양분을 감사히 여길 뿐!


우리는 그저 현행을 잘 따라가는 것으로! 안 되는 수학 머리일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자기만의 방법을 발굴하는 것으로! 그 따위 머리를 물려준 할 말 없는 어미지만, 그런 어미가 응원한다는 것만을 고백한다. 아이가 꾸준히 함께 했던 수학의 끈! 그토록 싫은 수학이 조금씩 재미있어지는 것 또한 목격하는 엄청난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아이가 반타작하던 것들을 조금씩 회복하며 만점을 받던 날. 학교에서 2단원 단원평가를 본다는 공지가 왔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엄마, 학교에서 시험 본다는 데, 타이머 좀 해줄 수 있어?" 하더니, 사놓은 문제집 실전 편을 스스로 편다. 그날은 2회나 되는 양을 한 번에 다 풀었고, 학교에 시험 보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다며 가방에 넣어가도 되는지 걱정을 하면서 문제집을 넣어갔다.


오늘,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시간 내에 모든 문제를 다 풀었어." "엄마, 내가 백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문제가 다 풀렸어." 아이의 입이 귀에 걸려서 행복하게 말한다. 마지막으로 "엄마, 이번에는 65점보다는 더 잘한 거 같아. 확실해!"


하하하! 그래. 너무 잘했다. 우리 딸. 이번에는 단연코 65점보다는 잘 보았겠다 싶다. 백점이 아니어도 너무 실망하지 말기를.... 점수는 그저 점수일 뿐! 우리 삶에서 그 점수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점수를 받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반짝반짝 빛나 다른 모든 인생길에 자양분이 되는 것이니, 이미 너는 빛나고 있다고!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되찾는 수학의 재미와 공부의 본질이, 아이의 자기 효능감을 높여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반짝이는 아이를 사랑으로 응원해준다.

처음으로 시간내에 푸는 것 성공하고 and 조건으로 다 맞았던 날의 흔적
매일 같이 모여, 작은 성취들이 쌓이던 순간. 눈물도 어려움도 자기효능감의 일부가 되어 반짝일 그 날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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