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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08. 2021

여행지에서 만나는 우리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던 순간, 우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

세부에 다녀왔다. 따뜻한 볕, 깨끗한 바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그곳은, 길 하나만 건너면 펼쳐지는 리조트 밖의 세계와는 천국과 지옥 차이같이 극명하게 달랐다. 어쩌다 필리핀이 저렇게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이렇게 눈에 보이도록 이곳과 저곳의 차이가 심해졌을까, 마음 한편이 좋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도전적이고 개척적이던 여행 취향이 보수적이고 안정적으로 변화되어, 평생을 두고 한 번을 가보지 않던 휴양지를 찾게 되었다. 그나마도 무조건 안정만을 추구하다 보니 제주도를 제외한 그 어떤 해외여행도 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나에게 활활 타오르던 방랑벽이 아이들을 낳고 나서, 이토록이나 사그라들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비교적 비행시간이 짧으며 안정적이라고 생각되는 휴양지를 찾다 보니, 남태평양 쪽을 주야장천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해에는 왠지 모르게 필리핀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인정한다. 주변에서 필리핀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 시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에 혹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세속적이라고 비난을 받을 것을 각오하며,  가정 육아를 만으로 6년 꽉 채워 해온 나에게 시터 사용의 이점이라는 것이 주는 유혹은 컸다.


처음에는 "그래, 괜찮다. 얼마 하지 않는 돈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고 봐준다니 좋겠다 싶어, 당연히 시터를 써야지"하는 마음과 "첫째 아이의 경우 조금이라도 영어 노출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겠거니"하는 마음이 겹쳐져서 당연히 시터를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출발을 하였다. 세부에 머물며 하루 전에 현지에서 예약을 하면 된다고 하여, 미리 예약을 하지 않은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부에 와서 지낸 초기의 며칠 동안, 유심히 리조트 안에서 본 시터와 아이들의 풍경을 보았다. 시터는 아이들을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놀아주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들의 부모님들도 어딘가에서 마사지를 받는지 아이들 곁에 없었다.


어떤 아이들은 미끄럼틀의 질서도 지키지 않고 그저 자기가 먼저 타고 내려오고를 반복하고,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시터 역시도 아이에게 제지하지 못하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어떤 아이는 이제 돌 하고 몇 개월이 지난 것 같이 아장아장 잘 걷는 게 귀여우나, 돌쟁이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아 조금 불안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 불안한 아이를 달래는 시터의 노력이 눈물 나게 느껴졌다.


돌쟁이 아이가 시터에게 어떻게든 비비며 적응하는 것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 한편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늘 가족여행이 설레고, 즐겁고, 그토록이나 기다려졌던 것은, 가족여행을 갔을 때만큼은 일상에 바쁜 우리 가족이 사소한 것 까지도 다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컸다.


그래서 일상에서 듣지 못하였던 엄마 아빠의 생각과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동생이 어떤 점들을 좋아했는지 새롭게 또다시 알아가고, 그렇게 우리는 무다 함께 같은 일정을 돌아다니며,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이 일종의 family bondship을  키워주었던 것 같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엄마의 눈빛은 일상에서 만나는 엄마의 눈빛보다 무언가 조금 더 특별했다. 오롯이 나를 바라봐주는 그 눈빛 안에서 나는 그 순간만큼은  특별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함께 했던 이야기는 우리만의 이야기로 탄생되었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우리 아이들을 이끌고 가족여행을 다닐 때도 우리가 모든 것을 함께 a부터 z까지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늘 좋았던 것 같다. 오로지 그 여행기간에는 집안일, 식사 준비, 아이들의 일정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내려놓고, 단지 아이의 눈빛 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온 여행을 통틀어 아이들이 내는  그 눈빛을 쫓아 모든 걸 함께 할 수 있음이, 그리고 그걸 나 혼자만이 아닌, 아이 아빠도 같이 볼 수 있음이, 나에게는 여행의 특권이었다.


낯선 곳에서, 언어도 낯설고, 엄마 아빠도 곁에 안 보이는데, 시터가 아무리 friendly 하게 한다 하여도, 시터랑만 둘이 남겨진 아이가 어떻게 느낄지. 아이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가뜩이나 낯가림이 심한 둘째가 걱정되고, 우리가 다 같이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임이 더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현장에 오면 예약을 해야지 했던 시터를 과감히 포기하였다.


차라리 아이들이 첫째 정도 나이이면, 시터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아이들이 자기끼리도 잘 놀고, 위험하지 않게 조금 지켜봐 주고, 친절하게 대화해주고, 그러면서 영어도 좀 배우고 써보고 하니, 나이가 조금 찬 어린이들은 오히려 시터가 더 잘 활용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영유아 꼬맹이들의 경우는 오히려 시터가 얼마 정도의 값어치를 할 것인지가, 나에게는  의문점으로 남았다.


바다 위의 스노클링, 호핑투어 때 시터와 이렇게 리조트 안에서만 머물 때의 시터와는 시터 활용의 차이가 커서, 이번 여행에서는 과감히 포기하고, 그 대신 아이들의 눈동자를, 아이들의 몸짓을 하나하나 더 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매일같이 해변 러닝을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수평으로 길게 뻗은 기차 같은 구름, 그 구름 위에 칙칙폭폭 연기를 내는 것 같은 구름들이 엉켜서 만들어낸 하늘의 경관! 그리고 바로 그 아래, 색의 그러데이션이 이렇게 되어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바다의 색들, 그리고, 파도를 경계로 땅과 물이 나뉘는 그 경계선에서 아이는 신나게 달리기를 했다.

해변 러닝은 특별하다. 맨발이 모래에 닿는 느낌과 발목에 파도가 부서지는 느낌을 온전히 느끼며, 내가 가진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파도가 더 들어올 때에는 자칫하면 발란스를 잃어 넘어질 수 있다. 그런 찰나의 순간순간들을 기억하며 뛰는 바닷가 조깅! 그러다 불어오는 바람이 살에 닿는 느낌! 짠 바다내음! 찰 삭이는 파도 소리!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다. 이 모든 순간을 함께 호흡하며 쿵쿵 뛰는 심장 소리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친구들이 하나같이 물었다. "어때? 시터 사용할 수 있어서 편하지? 너는 마사지도 편히 받고 정말 신세계지?" 그리고 나는 그저 웃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런 속내를 어떻게 한마디의 대답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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