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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19. 2021

산타를 믿는 아이에게

산타를 믿는 어른이 되어 보내는 그 시절 나에게 주는 편지


크리스마스에는 착한 어린이는 선물을 받는다고 한다. 착하면, 억울할 일 많은 어린이들이 그날만큼은 착하다는 이유로 보상을 받는 날이다.


나는 늘 양보하는 것이 당연했고,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니, 당연히 나의 마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고 있었다. 목소리를 잃은 채 그저 착한 아이로 살아가던 그 시절, 어린 내가 유일하게 기다렸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생일도, 어린이날도 아닌,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는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산타클로스가 그동안의 나의 서러움과 억울함 그리고 착하고자 하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로 인해 곪은 마음을 알고, "너 참 착하구나!" 하고 선물을 주셨기에. 이 날이 있었기에 어쩌면 그 364일을 나는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친구들이 모두들 크리스마스 따위는 없다고 외칠 때에도, 고개를 흔들며, 마음속 굳게 믿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없어져버린다면, 착한 어린이로 살아온 나의 마음을 보상해 줄 구실이 없으니, 어쩌면 나는 억지인 것을 알면서도 더욱 간절히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존재할 거라고! 어디선가 나의 선행을 보고, 억울하지 않게 일 년에 딱 한번, 크리스마스에 보상을 해 줄 거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르골이 돌아가는 장식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칼림바 소리와 비슷한 은은한 캐럴의 음에 아름다운 눈이 뿌려지며, 크리스마스 장식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하염없이 보았다. 유리로 쌓인 오르골 안 속의 세상은, 착한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억울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는 그런 별천지의 세상과 같아 보였다. 크리스마스 때에만 등장하는 그런 오르골 장식들을 볼 때면,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때만큼은 무엇에 홀린 듯, 오르골을 멍하니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Sometimes, seeing is believing.And sometimes, the most real things in the world are the things that we can’t see.


우리는 사실 보는 것을 믿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이겠지 하는 마음에, 어린 마음에도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나의 이런 마음들, 표현하지 않아 아무도 보지 못하고 영영 몰랐을 이런 마음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누군가에게 닿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산타클로스 건, 하느님이건, 천사 건, 누군가에게 닿아 이런 나에게도 누군가의 위로가 전해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며, 이 날을 기다렸다.


사실상 거의 모든 선물을 가질 수 있는 나였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싶었던 단 하나의 선물은 그저,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런 작은 소원이었을 뿐! 아름다운 오르골의 소리와 그 안 속 세상에서 내가 얻은 위로의 선물이 그러하였다.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 본 동화책 The polar express에서 승무원이 티켓에 모두에게 다른 단어를 찍어주는 데, 주인공 아이에게는 “believe”라 펀치를 찍어주었다. 내가 진심으로 믿으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더 간절히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산타클로스는 존재한다고. 그리고…. 정말로 그러하다.


지금까지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다 이루어졌다. 비록, 그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돌고 돌아 이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말이다. 그렇게 정말 산타클로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착하고 싶은 의도를 알아주지 못해 속상했던 아이들, 한없이 아이 같아야 할 때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들, 그리고, 마음과 표현이 엇갈려 나가는 아이들, 모두가 나쁜 아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선함이 남아 꺼내고 싶은 아이들, 세상의 많은 다른 아이들의 마음속에 숨어져 있는 '선함'을 끌어내어, 보상을 받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은 그 마음에, 이 세상 아이들이 쉴 마음의 한 구석에는 크리스마스가 간절히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렸던 특권을 모르는 것이 아니므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위선 같아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던 주제, 크리스마스! 그리고,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정신이 잊히는 것 같은 요즘, 선물과 상업성으로 물들고, 진정한 가족과의 대화와 사랑 그리고 이웃과의 나눔을 상실하고 어쩌면 화려함과 겉보기만이 가득 찬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마음이 쉴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한 해를 보내며 마음이 쉴 수 있는, 아기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난 그 크리스마스 정신을 간직한 크리스마스를 꿈꾼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사랑이 더욱 가득한 크리스마스! 나보다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 더 나눌 수 있는 그런 크리스마스가 되면 참 좋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었던 거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쿠루지 조차도 행복했던 사랑 풍부했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있었듯이. 문득, 내게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살아왔던 시절이 있어 감사하다. 그동안의 특권으로 인해 침묵했던 죄를 달게 받으며, 이제는 그러한 크리스마스를 나누고 싶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서점에서 데려온 오르골을 돌려보았다. 오르골이 돌아간다.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이 비치고, 지금의 나의 모습이 비치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비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진심을 담아 사랑을 담아 이 날을 보내며,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하며, 반짝이며 내리는 오르골의 눈을 한껏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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