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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Dec 19. 2021

쓰고 싶으면 쓰면 되지, 뭐가 문제야?

터지기 직전의 물풍선에 물을 빼내며...

아이들이 드디어 모두 잠들었다. 꼭 아침에 부랴부랴 같이 일어나 급한 아침을 맞으며 나만의 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질 거란 걸 알기에,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들면 졸린 눈을 비비고 꾸역꾸역 다시 일어난다.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 이어폰을 켠다. 노랫소리가 쿵쿵 귓가를 울리며, 타자 소리가 묻혀간다.



하루 내내 지금 이 시간을 열망하고 고대하였다.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이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를 견딘다. 작가도 아닌데, 우습지 아니한가! 책 한 권을 내보지도 않은 자가 같찮지 아니한가!


어이가 없지만, 그러하다. 글과 관련한 그 어떤 아웃풋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 나는, 일단 종이랑 펜이 있으면, 굶주린 사자처럼 알아서 손이 움직였고, 노트북과 쓸 곳이 있다면 목마른 사슴처럼, 쉬지 않고 타자 소리를 내어 댔다. 긴긴 육아의 시간들 안에 떠다니던 생각들을 잡고 싶어 여기저기 메모지에 정신없이 써대고, 핸드폰 음성인식으로 급하게 내게 카톡 보내기를 해놓았던 하루치 조각난 상념들을 돌아보는 시간.



'내게도 앉아서 진득하게 글을 쓸 시간이 주어졌으면 참 좋겠다. 내게도 제대로 된 책상 하나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아무 데나 앉아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으로 삼킨 채, 아이들이 잠들기만을 기다린다.



생각을 정돈하고, 적합한 단어를 찾고, 쓰고 싶은 말들을 다듬기 위해서는 커서가 깜빡여야 정상인데, 나의 커서는 늘 바빴다. 아이들이 목욕을 한다고 놀던 물풍선, 작은 물풍선이 거대한 수도꼭지에 꽈악 매달려, 온몸으로 물을 받아내며 자꾸만 팽창한다. 한 방울만 더 있으면 터지기 직전같이! 그런 상태로 늘 매일매일 물이 차서, 터지기 직전에 물을 빼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구석을 건드려도 매일같이 너무나 쏟아낼 마음들이 가득해서, 앉은자리에서 정신없이 쏟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쉬어졌다. 마음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 묵직하게 들러붙은 응어리를 어떻게든 글로 풀어내고 보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것은 꼭 점핑을 하는 것과 같다. 그토록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트램펄린 위에 선다. 발의 무게가 천근만근 하던 것이, 숨이 멎기 직전까지 온 힘을 다해 뛰고 나면 무겁던 발이 솜털처럼 가볍다. 작두를 타듯, 트램펄린에서 훨훨 날고 있는 나를 느낀다. 숨이 멎기 직전까지 뛰다가 매일같이 나의 한계를 마주하는 그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이 갑자기 걷히고, 나의 한계를 갱신하며, 나는 어느새 날고 있다


글을 쓰고 나면, 마음속의 무겁던 응어리들이 어느덧 눈 녹듯 녹는다. 정체모를 형체 없는 마음들을 활자 안에 가두는 작업, 나만의 활자 안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는 나의 마음은 무형에서 유형으로 변신한다. 그 변태의 과정을 누릴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하다. 그렇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너무나도 쓰고 싶었다


바닷가 백사장에서, 한 주먹 가득 담아온 모래.

한 줌 꼭 쥐어도 이내 스르르 흘러버리는 손아귀 속 모래처럼, 나의 삶이 전부 후드득 쏟아져내려, 결국 몇 안 되는 모래알만 붙어있는 손바닥이지만, 그 손바닥 속 모래알을 눈물로 하나하나 뜯어내며, 그거마저 없어질까 두려운 마음에, 열심히 매일같이 일기를 써댔던 기나긴 세월들.


왜 쓰는지 모르면서, 쓰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서 썼던 10대 때의 일기들. 왜 쓰는지 모르면서, 쓰고 나면 내게 주는 선물인 것 같아 나를 사랑해주고 싶었던 20대 때의 일기들. 잊어버릴까 봐 영영 내 것이 되지 않을까 봐 잡고 싶은 순간들을 잡으려고 어떻게든 썼던 30대의 육아일기들


​그리고 맞은 40대의 일기들. 아무도 읽지 않는 에세이를 썼고, 그냥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것이라 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해 보았다는 것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이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같은 게 과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눈물로 움켜쥔 나의 손 안에는 땀으로 인해 겨우 붙어있는 몇 알의 모래알뿐! 그마저도 잃어버리기 싫어 꼭 쥐고 써서 기록으로 남겨야만 했던 그 모래알들을 이제는 물로 씻어 내어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냥 아무 꿈도 꾸지 않았던 냥 또다시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미 나의 마음 안에서,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 것을 따라가 본다. 나는 정말 써 보고 싶은데, 남의 시선 따위 상관 않고, 나만의 결로, 나의 꿈을 꾸는데 그것이 이토록 힘들일이냐며, "쓰고 싶다"라고 엉엉 울던 그때로 돌아간다.


"쓰고 싶으면 쓰면 되지. 뭐가 문제야.

뛰고 싶으면 나가 뛰면 되지, 뭐가 문제야."


이제부터 내가 움켜쥔 모래알들은 내 안을 빠져나가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일 것이다. 나이 마흔에 작은 꿈을 꾸며, 행복한 타자 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나의 삶을 적어간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어도 괜찮다. 그 단 한 사람이 나여도 좋다. 적어도 내가 기록한 삶 안에서 보이는 나의 삶은 새롭게 나의 활자 안에서 빛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고, 그렇게 나는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의 마음을 풀어줄 확실한 할 거리를 안다는 것이 다행이고, 하루하루 작은 기록들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함께 마음을 열어 삶을 응원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축복이다. 나의 삶은 지금 이대로도 꽤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새로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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