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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an 11. 2022

무용의 쓸모, 생리통의 현주소

생리통이 무용해지기까지

"나의 소원은 폐경이 되는 거야."라고 부르짖을 정도로, 끔찍한 생리통을 달고 살았다. 어느 정도 끔찍했냐면, 나는 무통주사 없이 생 진통으로 아이를 분만을 하였는데, 마지막 힘주기 직전 단계까지, 생리통을 다스리듯 호흡을 하여 살아남았고, 급기야 담당 간호사가 "어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호출하지 않을 수 있냐며, 독하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억울하게도 나는 첫째를 출산하는 그날 알게 되었다. 나의 생리통은 분만 진통의 수준이었음을! 그리고 그것은 둘째를 똑같이 생 진통을 앓고 출산함으로써 확고해졌다.


스무 살에 만나 십 년을 사귄 후 결혼한 신랑은 대학시절 생리통으로 거의 기절 직전인 나를 여러 번 업어 나르던 일등 공신이었고, 회사에서 새하얗게 질려 실신 지경인 나를 업어 근처의 병원으로 나르던 선배님은 나중엔 "어떻게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분개하셨다. 중요한 업무를 앞두고 생리일과 겹칠까 봐 노심초사하는 일은 끊임없었다.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진지하게 물었다. "생리통으로 인해 사망한 사례가 있나요?" 그러나, 어이가 없다는 표정의 절레절레 고갯짓만이 내게 돌아올 뿐이었다. 자궁선근증인지 무엇인지 였는데, 생리를 하지 않으면 생리통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만 듣고 오곤 하였다.


생리통으로 인하여 배가 끊어질 듯 아프다가 머리가 하얘지며 산소가 부족해지는 단계에 이르면, 정신을 잃지 않게 애를 쓰며 호흡을 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실신을 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는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런 혼자만의 호흡으로 이미 아이 머리가 질 입구 바로 앞까지 나오기까지 아무 의료진의 도움 없이 혼자 구석 대기실에서 호흡만으로 끔찍한 쌩 분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고의 고된 삼단계 관문을 통과하여 좋은 점 중 하나는 빌어먹을 생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렇기에 말아먹을 생리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심각하던 나의 생리통은 둘째를 출산하고, 만으로 1년 반을 모유수유를 한 후에, 신기하게도 반의반의 반의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한 이후에 그 반의반의 반의반의 반 정도로 다시 또 줄어들었다.


이제 더 이상의 출산 계획이 없고, 그렇기에 생리가 언제든 멈춘다 하더라도 이는 언제든 내게 환영받을 일이라는 것을 안다. 22년 지기 신랑에게는 말버릇처럼 했던 "나의 폐경일은 나의 축제일일 거야. 생리통으로부터의 해방일에 만세를 부를 거야!"라고 했던 말은 이제 더 이상의 쓸모가 없어졌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쫒았다니며 힘들게 하던 생리통은 사라지고 말았다. 극도의 진통 앞에 살아남았던 생존 호흡은 이제 완전한 과거형이 되었다.


단지, 생리의 기간이 다가오면, 묵직하게 두터워진 자궁 내벽이 질 가까이로 내려오며 몽글몽글 서로 들러붙어 커다란 덩어리 형태로 배출되는 생리혈들을 신기하게 관찰할 뿐이다. 배를 쥐어짜며 억지로 숨을 쉬기 위해 호흡을 해가며 기어서 화장실을 갈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 생리대를 교체하다 기절하면 봉변이라며 억지로 정신줄을 잡던 그 자리에서, 나는 이제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자궁 내벽 덩어리들을 한참을 관찰하는 변태스러움에 경악한다. 이렇게 편하게 생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다.


이제 나는 사실상 생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런 무용의 지경에 이르자, 그동안의 쓸모를 다 한 자궁의 활동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고마움과 신비함을 느끼지 못한 채, 고통과 억울함으로 얼룩진 기다림, 매 달 두려움에 벌벌 떨며 맞이하던 생리를 이렇게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경험한다. 그리고, 실제로 실용성 측면에서는 쓸모를 다한 나의 몸이 만들어내는 매 달의 기적에 경이를 표한다. 이제야 나의 몸이 만들어내는 생리의 신비를 온전히 누리며, 즐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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