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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Apr 08. 2024

내가 쓴 글을 다 지우고 싶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는 힘든 와중에도 이만큼 성장했구나, 꽤나 좋아졌구나, 나 좀 멋있는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제 내 글을 모두 지우고 싶었다. 왜냐면 죄다 거짓이라고 느껴져서... 집단 상담 때문이었다.


상담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집단 상담을 경험해 보는 걸 추천받았다. 멀리 경기도까지 가서, 8시간 정도를 낯선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했다. 밤을 꼴딱 새우고 30분 정도밖에 못 자고 참여했다. 카페인에 약한 나라서 커피를 진하게 3잔을 마시고 둘러앉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 상담 수련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따뜻하고 수용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다소 쌀쌀맞아 보이는 인상을 가진 사람들과 무릎이 거의 닿도록 붙어 앉은 채 상담은 시작됐다.




나는 크게 두 번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내 개인적인 문제를 털어놨을 때 모두가 내 선택을 지지해주지만은 않아서였다. 윤리와 관련된 선택인데,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 나는 내 문제를 가지고 오래 이야기해 주고 진지하게 고민해 주는 사람들이 일단은 고마웠다. 그리고 크게 비난받는 느낌도 들진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 밑바닥이 혼란스러웠다. 이건 뭘까, 쉬는 시간 두 번 정도를 지나고 알았다. 내가 이 모든 사람들의 가치관과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고 싶어 하는구나. 누구 하나 실망시키고 싶지 않구나. 한 사람에게라도 비난받고 싶지 않구나. 밖에서 살던 것과 정말 똑같은 마음의 흐름이었다.


다음번 충격은 좀 더 컸다. 나는 내가 엄마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겨 왔다. 어느 분이 내게 왜 절에 있었냐고 물었는데 그게 오열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찬찬히 설명했다. 나는 우울과 불안이 오래 있었다고. 그러니 왜 그런 거 같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아마 내 추측인데 자동적으로 나를 자책하는 사고가 강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어릴 때 엄마가 날 많이 때렸고 언어폭력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절에 있으면서 스님과 법사님들에게 뭘 해도 잘한다 잘한다 이야기를 들어 긍정적 피드백이 이제 기본값이 되었고, 그 결과 엄마가 내게 질책을 하면 그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됐다고도 설명해 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분명히 담담하게 팩트만 얘기한 것 같은데 뭔가가 울컥했다. 그리고 다른 분이 나와 비슷한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슬픔이 막 북받치게 올라왔다. 나는 약한 모습 보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눈물이 끊이질 않았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소리 내며 엉엉 울고 싶었는데 사회적 체면이 있어서 그러진 못했다. 휴지를 몇 장 썼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소리도 내며 울었다. 그분 이야기가 다 끝났는데도 한참을 오열했다. 사람들이 조용하게 그냥 있어줬다. 그치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 됐다.


거의 집단 상담의 주인공이 됐다. 내가 좀 진정하고 다시 상호작용을 시작하자 많은 질문이 들어왔다. 현재 엄마와의 사이를 묻는 질문이 있어서, 평소에 생각한 대로 이야기했다. 우리 엄마는 내게 너무나 많이 사과했고 오히려 보기 안쓰러울 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탓을 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한 상담사분이 물었다. '그러면 엄마를 원망하고 싶은데 못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엄마를 원망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엄마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나를 때렸을 것이라고. 아마 그때는 미쳐있는 상태라서 나를 화풀이 대상으로 때렸을 것이고 나는 그걸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만약 원망이 남아있다면 그건 나 스스로 승화시켜야 할 몫이라고. 근데 그 말을 하는데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그래서 내가 아직 마음으로는 완전히 엄마를 용서 못한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잠도 한숨 못 자고 참여해서 정신이 없어질 만큼 오열을 했더니 정말 정신이 나간 상태로 끝이 났다. 비싼 상담 참가비용에 걸맞게 아주 본전은 제대로 챙긴 것 같았지만 어딘가가 영혼 나간 듯 축 처졌다. 그리고 마음 밑바닥에서 슬픔이 슬슬 끓고 있는 게 오래 느껴졌다.




단정하려고 애쓰면서 살아간다. 내 눈에 보이는 소지품들을 정갈하게 두고 표정도 자세도 그렇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그건 남들 보기에 내가 좀 멀쩡해 보이길 원해서일 거다. 그런데 어제 내가 경험한 내 무의식은 정말 야만 그 자체였다. 내게 반대하는 의견을 표하면 마음속으로 말하는 사람을 미워했다. 분명 절에서 아주 많이 절하면서 돌이켰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는 여전히 이성이 작동하지 않았다. 어제 엿본 내 무의식은 전혀 정갈하지도 단정하지도 않았다. 그냥 토하듯 튀어나오는 무언가였다.



아마 나는 엄마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그리고 그건 나를 사랑해서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엄마는 여전히 가끔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집단 상담에서 울었다고 하니 엄마는 왜 여기저기 다니며 울고 다니냐며 정신 좀 차리고 살라고 하셨다. 아무리 나를 사랑하셔도, 미안해하셔도 사람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바뀌는 정도도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내 기준에서 다소 완벽한 변화를 엄마에게 요구하고 있었나 보다. 여전히 엄마라는 존재를 완전하고 온전하게 사랑하고 이해하진 못하고 있다는 걸 집단 상담을 통해 알았다.




상담을 마친 직후엔 나의 무의식이 사실 무서웠다. 통제되지 않는 게 내 속에 있는 걸 알고 나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과연 이렇게 내 문제가 남아있는데 좋은 상담사가 될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도 해서 기분이 가볍진 않았다. 여전히 거대해 보이는 마음속 무언가를 심리학이 과연 정말 치유할 수 있는 걸까 의심도 들어서 마음이 심란했다.


집에 와서 얼른 씻고 누워 자고 일어났다. 이틀 치 잠을 몰아자고 나서 지금은 좀 평온하다. 그렇지만 나는 내 속에 아주 역동적이고 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걸 알아 얼떨떨하다. 이것도 불교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내가 승화시킬 수 있을까. 그런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어서 저명한 심리학자들이 직접 쓴 책들이 보고 싶어졌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마음들도 살풀이하듯이 잘 다독거려 챙길 수 있는지 그 답을 얻고 싶다. 그리고 만약 내가 상담사가 된다면, 어중간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실력이 있는 상담사가 되어 나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구체적인 희망이 생겼다.


정갈한 척 적었던 이전 글들이 가식으로 느껴질 만큼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그렇지만 글을 쓸 당시에는 그게 내 진심이었고 또 진실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오르고 내림이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항상성을 기대하면 실망이 따른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이전 글을 쓴 것도 나고, 정신 놓고 울던 것도 나다. 나라는 걸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건 즐겁기만 한 일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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