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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Apr 05. 2024

교장선생님은 옷을 그렇게 입으면 안돼요

인도 비하르주 가야 지역에 불가촉천민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1년간 교장 소임을 맡았었다.


학교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법륜스님에 의해서 지어진 곳이다.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까지 지원한다. 졸업한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와 선생님이 되어 동네 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한다.


그 중, 점잖은 선생님 '파완'이란 친구가 있었다. 내가 교장 역할을 할 때 내 옆에서 묵묵히 교감 역할을 해준 친구다.



점잖은 교감쌤, 파완


힌디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땜빵(?) 교장으로 왔음에도 점잖고 성실한 파완은 늘 내 옆에서 묵묵히 날 도와 학교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졌다.


거의 6개월쯤 되어 이젠 힌디어도 어느 정도 구사해서 교사들과 어느 정도 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던 날이었다.


파완이 나를 긴밀히 불러냈다. 그러고선 나지막히 말했다.


시스터, 인도에선 이런 옷을 입으면 안돼요.
특히 교장이라서 정식 복장을 갖추는 게 좋아요.



파완이 내게 조언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당시에 나는 더운 날씨에 편히 다니기 위해 종아리 중간까지 오는 편한 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런데 그런 차림이 인도 사람들에겐 익숙하지도 않았고 교장으로서 권위는 더더욱 서지 않는 복장이었던 거다.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선생님이 조용히 해준 충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바로 인도식 뚝빠따와 한벌짜리 세트 옷을 입고 출근했다.



학부모와의 만남에서 격식 있게 차려입은 나


인도에 있으면서 우리 나라와 정말 다르다는 걸 많이 체감할 수 있었다. 내게는 인도 아이들의 큰 이목구비가 김태희가 따로 없을 만큼 이쁘고 멋있게 보였는데 아이들은 무조건 하얀 피부가 좋다며 납작한 내 얼굴을 이쁘다고 해줬다.


상대적으로 흰 피부를 가진 민족이 남하하여 어두운 피부를 가진 토착 민족을 지배하며 카스트 제도를 만들었고 그래서 상위 카스트일수록 피부가 밝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문화라고 생각한다.


지배 계급의 논리대로 몇 백년이 넘도록 흰 피부가 권력의 상징이 되어 온 것을 보면서 한국은 어떤가, 돌아보게 됐다.


또 내가 살던 가야의 인도는 여성들이 혼자서 어디를 다니지 못한다. 대학교 시험을 치러 갈 때도 집안의 남자와 함께 이동해야 한다. 그만큼 여성들은 누군가가 지켜줘야만 하는 존재이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많은 여자 아이들이 내게 언제 '사디'를 할 거냐고 걱정을 했었다. 사디는 힌디어로 결혼이다. 그 때 내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아이들 입장에서 나는 이미 결혼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조혼의 풍습이 아직 남아있어서 10대 중반만 되어도 아버지들끼리 중매로 결혼 상대가 정해지고 시댁으로 보내져 학교를 중도에 나오지 않는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만약 아버지가 정해준 중매 상대가 아니라 다른 남자 아이와 연애를 하거나 심지어 같이 다니기만 해도 마을에 소문이 나고 부정한 여자아이가 되어 아버지는 그 여자 아이를 벌할 수 있다. 나와 파완도 학교 여자 아이의 아버지가 학교까지 찾아와 분노하며 따지는 걸 말리느라 땀을 뻘뻘 흘린 적이 있었다. 


여성이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남는 것이 가장 비참한 운명이 되는 내가 살던 인도. 그 곳에서 남성들은 현대식 복장인 청바지, 셔츠를 입고 다닐 수 있었으나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다. 여성들은 더운 날씨에도 가슴과 다리가 보이지 않도록 천을 덧대 입고 길게 내려 가려야 했다. 


여성을 보호하는 문화가 여성을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 이면에는 여성을 자율적인 한 사람의 주체로 보기 보단 어떤 남성에게 귀속되는 피동적 존재로 보는 것이 느껴져 씁쓸했다.  


카스트가 법적으론 없어졌지만 여전히 문화 속엔 깊게 남아있는 인도. 그리고 아직 많은 여자 아이들이 남성에 기대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내가 살았던 인도. 


그 곳에서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이 자신의 계급과 성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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