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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Apr 11. 2024

사랑을 제정신으로 할 수는 없나

왜 난 짝사랑을 하면 반쯤 미치는 걸까?

이건 나만의 특성일까 아니면 보통 사람들도 겪는 감정일까.


라디오헤드의 Creep이란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짝사랑할 때마다 공감이 많이 간다. 상대는 특별하고 모든 걸 가진 우월한 존재로 보이고, 그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 열등감이 폭발한다.  





원래도 자의식이 작진 않은 것 같지만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거울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근래 들어 이렇게까지 스스로가 못생겨 보인 적이 없었다. 마음이 불안해진다. 아, 이렇게 생기면 안 되는데... 이러면 사랑받을 수 없을 텐데...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반복적으로 따라 든다. 외모 콤플렉스가 도졌다.




게슈탈트 치료 이론을 읽다가 책이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여기서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지금 ...을 하고 싶다로 표현해 보세요.'


'나는 지금 불안하지 않은 영속적인 사랑을 받고 싶다.'


내가 좀 호감이 있는 멋진 사람이 나를 귀여워해 주면 마음이 크게 일어난다. 거의 매 시각, 무얼 봐도 그 사람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만을 특별하게 편애해 주길 바란다. 그게 충족되는 순간에 뇌에서 뭔가가 반짝반짝 터지는 기분이 든다. 그게 도파민인지 엔도르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상당히 그 기분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다.


안정적이고 내가 무얼 해도 이해해 주는 사람에 대한 이상이 큰 것 같다. 종종 이상적인 어머니 같은 모성애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많이 마음이 가는 이유일 것이다.


유수스님께서도 짚어주셨다. '네 마음 받아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다.'




자주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란다. 참 생각만 해도 황홀한 일일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도 싶다. 좋고 싫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진 좋음은 내게 지나치게 달콤하고, 싫음은 내게 지나치게 혐오스럽다. 많은 사람들, 웬만하면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자꾸 짜증이 난다. 지나치게 좋아하는 마음에 끄달려 괴롭고 싶지 않은데 그게 안 되니 나 자신이 싫어진다. 오늘은 이렇게 괴로울 바엔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기도 했다.


머리가 복잡하고 기분이 큰 폭으로 왔다 갔다 한다. 친구들에게 고민을 말하면 대부분 봄이구나, 원래 짝사랑이 사람을 미치게 하지 등의 당연하단 반응이 많다. 몇몇의 친구는 짝사랑이 내 정신에 해로울 것이라고 진지하게 걱정해주기도 한다.


한 사람의 손짓, 몸짓,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좌초될 것처럼 위험하게 흔들린다. 그 사람이 그 말을 한 건 어떤 이유였을까, 생각에 생각을 잇다 보면 점점 기분은 안 좋아지고 그러면 다 때려치우고 싶어 진다. 많이 지친다.




많은 것이 혼란스럽다. 사람을 좋아하며 흔들리는 일은 원래 그 속성이 이렇게 버거운 것인지 아니면 내가 흔들리기 싫어하기 때문에 유독 버거운 것인지 모르겠다.


법륜스님께서는 사람을 좋아할 때, 산 보듯 바다 보듯 좋아하라고 하셨다. 산을 보고 바라는 게 없듯이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사람이 질척거리지 말고 바삭바삭거려야 한다고도 하셨다.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군말 없이 물러서줘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 질척거리는 불쾌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집착을 조금 여의고 자연 보듯 좋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러니 또 내가 나 자신을 귀찮은 파리 보듯 조금은 혐오스럽게 바라보게 되는 거다. 흑흑. 파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만 앵앵거렸으면 좋겠다.


일단은 도반이 추천해 준 법문을 보고, 절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지독한 짝사랑을 언제쯤 그만하게 될까. 내 나이 서른다섯이 넘어서도 이러고 있을 줄이야...


뜨거운 돌을 손에 잡고 있으면 '아, 뜨거워!'하고 내려놓으라고 했다. 돌이 뜨거운 걸 아는 지혜, 그리고 그 돌이 좋더라도 나를 위해 내려놓는 용기가 지금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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