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이다. 좋은 하루보다 괜찮은 하루가 더 좋은 하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말이다. 사실 '괜찮은'이란 형용사는 요즘 내가 좋아하는 분이 잘 쓰시는 말이다.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에 괜찮은 하루를 보내라고 대답하신다.
괜찮은 하루라는 건 좋은 하루보다 만나기가 쉽다. 좋은 하루가 되려면 100 중에 80점은 넘어야 될 것 같은데, 괜찮은 하루는 60점 정도만 되어도 괜찮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은 좋은 사람, 좋은 학생, 좋은 딸, 좋은 행자가 되려고 목표를 세운 적이 대다수였다. 80점이란 기준을 채우지 못했을 때 나는 나쁜 사람, 나쁜 학생, 나쁜 딸, 나쁜 행자가 되곤 했다. 그래서 내 삶에는 작고 일상적인 좌절들이 빽빽했다.
비 오는 날, 절
10년 만에 문경 절을 다녀왔다. 4년의 행자 생활을 끝낼 때 나는 절에 무척 삐져있었다. 그래서 화해하고 다시 방문하는 데에 시간이 십 년이나 걸렸다. '삐졌다'는 말은 사실 귀엽게 표현한 거고, 26살의 나는 정말 큰 혼란 속에 빠져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었다. 걸음을 한 보 떼는 게 힘들었고 내 몸과 정신이 분리된 혼돈한 느낌 속에서 현실감각이 흐릿했다. 자꾸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절에 사는 대중들과 마주치는 게 고통스러웠다.
강산이 변하는 십 년이 흘렀다. 이제 와 지켜보니 괴로움의 원인은 '좋은 행자' 혹은 '뛰어난 행자'가 되고 싶었던 내 욕심 때문이었다. 불교에선 '상'을 내려놓는 것을 수행으로 본다. '상'이란 건 일종의 머릿속에 떠올리는 기준 같은 거다. 주로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지.', '나는 적어도 ~한 존재야.'라는 식의 기준이 되는데, 그걸 통해 세상과 자신을 판단하고 재단한다.
과거에 내게는 '4년이나 수행한 행자다.'라는 상이 있었다. 당시에 3년 행자 프로그램을 하는 후배 행자님들이 꽤 많았는데 나는 선배다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사실 그때 내 나이가 25살, 26살이었으니 뭐 인격적으로든, 수행적으로든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났겠는가. 거기다 후배님들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어린 마음에 내가 선배니깐 그 사람들보다 더 위의 존재라고 상을 지었다.
설상가상으로 후배 행자님 하나가 내게 덤비는 일이 있었다. '화의 화신'이라고 불리던 행자님인데 내가 무언가를 실수하자 배를 들이밀며 위협하는 듯한 언행을 했다. 그때, 세상이 하얗게 보이는 패닉에 빠졌다. 어릴 때 많이 혼나서인지 누군가에게 혼나면 불에 데듯 괴로운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공격을 당했더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엄청난 우울증이 날 찾아왔다.
스스로 대단한 것은 매일, 매 순간, 숨을 쉬듯이 절에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마음을 괴롭혀도, 어떻게든 약속한 3년이란 시간을 지키려고 버텼다는 것이다. 상태가 안 좋아서 스님 앞에 불려 가서 1시간 넘게를 말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 내게 주어진 일들을 버벅거릴지 언정 어떻게든 해냈다.
마음속에서 고라니가 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마지막 관문에서 나는 쪼르르 도망가버렸다. 다른 절에 묵으며 큰 스님 말씀을 듣는 만행에서 두 개의 절을 거친 후 세 번째 절로 향하다 대인기피가 심해져 근처에 있는 친구 집으로 피신을 간 것이다. 그러고는 또 스님께 보고는 드렸다. 스님은 날 안심시키시고 괜찮아질 때 언제든 절로 돌아오라고 하셨다.
학교도, 친구도, 연애도 포기하고 4년이나 수행을 했는데 내게 돌아온 게 겪어보지 못했던 극심한 우울증이라는 게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믿었던 스님도, 절도, 교리도 신뢰할 수가 없었다. 무얼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온통 헷갈린 탓에 절을 한 배 숙이는 것도 뭔가 턱 걸려서 할 수가 없었다.
스님이 항상 우리 기수를 놀릴 때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 행자님들.' 당시엔 그냥 하시는 말씀인 줄 았았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높게 상을 짓고 있었구나, 그걸 가볍게 표현하신 거구나 알아졌다. 나는 기라성 같은 선배인데 후배 주제에 내게 덤비고 나를 미워하니 그게 정말 현실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랬던 거 같다.
상이 그렇게까지 높아지니 수행을 하지 않고 수행하는 척에만 집착을 했다. 왜냐면 밖으로 '수행이 깊은 행자'로 보이고 싶었으니깐... 지금 돌아보면 상이 높아지고 수행을 놓친 제일 큰 이유는 수행 정진을 인도 1년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밤을 새워서 노트북으로 일 하고 힌디어를 공부하면서 아침 예불 시간엔 엎드려서 졸았다. 정진 시간엔 시원한 법당에 누워서 자기도 했다. 인도는 법사님도 스님도 안 계시기 때문에 훨씬 정진을 놓기가 쉽다. 환경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도 참, 정진을 엄청나게 게을리 하긴 했다. 가장 괴로운 사람은 게으른데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게 그때의 나였지 않나, 싶다.
하기로 한 것을 부지런히 성실하게 실천하고 대신 욕심은 줄이는 게 정신 건강에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준을 스스로 내리고 전보단 편안히 살고 있다.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우수한, 뛰어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앞으로도 좋은 것보단 괜찮은 것이 더 좋음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완전 실패라고 생각했던 4년간의 행자 생활도 그만하면 괜찮은 시간이었고 나도 그만하면 괜찮은 행자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