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글들을 연재하기 전에 먼저 엄마한테 미리 말씀을 드렸다. 이런 소재로 글을 쓸 거고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는데 괜찮으냐고 말이다. 엄마에 대한 복수심?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있어서 나는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걸까? 내 무의식까지 내가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글을 시작한 이유는 브런치북 소개에도 있듯이 그냥 비밀이었던 일면을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어서였다. 어쨌든 엄마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정말 마음이 쾌하지는 않으셨겠지만 말이다.
정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종종 그런 말을 듣는다. 혼란형 애착이 가장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법륜스님도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아예 사랑을 줄 거면 사랑만 주고, 미움을 줄 거면 미움만 주는 게 낫다고. 때린 후에 안아주면 아이의 정서가 더 힘들어진다고 말이다. 우리 엄마는 나를 때린 후에 자고 있을 때면 피멍 위에 약을 발라주셨다. 그런 유년기를 보낸 내가 이 정도 미친(?) 것에 그친 건 스스로가 대견한 일이 아닌가 싶다.
어디에 가서 난 어머니가 나를 때렸지만 동시에 정말 희생적으로 사랑하신 걸 안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 분은 이렇게 질문한다.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왜 당신을 때렸을까요?' 이 질문은 아직까지 내 아픈 부분을 조금은 찌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게 말이다. 엄마는 왜 나를 그토록 아끼시면서 또 동시에 그렇게 무참하게 때린 걸까. 그 지점이 내겐 물음표다. 그래서인지 그 지점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여전히 시큰거린다.
엄마랑은 예전 이야기들을 크게 불편함 없이 주고받는다. 며칠 전부터 궁금하던 것을 오늘 통화하며 여쭤봤다. '엄마, 나를 때릴 때 어떤 마음으로 때린 거야?' 누군가는 내가 오만하다고 혹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가해자의 마음도 이해하고 싶다. 왜냐면, 그냥 그렇다. 내가 너무 불교적인 가치관에 물든 걸 수도 있는데, 상대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면 미워할 일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우리 엄마는 왜 그 작은 아이를 때리고 후회하고 또 때렸을까.
어쩌다 보니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눈물 없인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처음에 엄마가 한 말은 '미쳐서.'였다. 근데 그 이후에 붙는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엄마의 기준이 있는데 내가 그걸 따르지 않았을 때 나를 때린 것 같다고 하셨다. 그건 잘못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란 이야기로 들려서 슬펐다. 두 가지 억울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어머니한테 설명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에 갑자기 집 열쇠가 없어졌다고 엄마가 나를 의심한 적이 있었다. 맞았는지 단순히 정신이 나갈 만큼 말로 혼이 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억울한 마음과 내가 받았던 상처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여러 번 부인했지만 믿어주지 않았고 결국 내가 한 일이 되어서 혼이 실컷 난 후에 열쇠가 찬장에서 발견됐다. 조그마했던 내 키가 닿지 않는 높이에 열쇠가 있었다.
중학교 때 교복을 사러 상점에 들렀다. 할인 이벤트 관련해서 엄마와 점원의 의견이 달랐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큰 나는 점원 말이 맞는 것 같아 점원 편을 들었다. 엄마는 씩씩거리면서 집에 가서 보자는 식으로 내게 조용히 화를 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문이 닫히기도 전에 장지갑이 든 손으로 머리를 세게 맞았다.
두 가지 사례 외에도 내가 기억하는 순간들은 꽤 많다. 굳이 끄집어내서 상기하지 않지만. 항상 맞을 때면 구석진 방의 구석으로 던져졌다. 머리카락이 잡혀서 끌려갈 때가 많았다. 질질 끌려가서 나는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엄마 잘못했어요,를 연신 외쳤던 것 같다. 엄마는 엄하고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방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고 두꺼운 커튼을 쳤다. 그리고 나무 막대기나 고무 호스로 주로 내 허벅지를 때렸다. 나는 소리를 질렀는데 옆집에 같은 학년 친구들이 살았다. 맞을 때 아파서도 괴로웠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중 스멀스멀 마음을 괴롭게 하는 건 수치심이었다. 맞는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아까 통화에서 위에 두 가지 이야기를 듣곤 우셨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줄 아셨다고 하셨다. 시간이 30년 가까이가 지나도 억울하게 맞은 것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아픈 건 내가 이유 없이 맞았다는 울분과 원망인가 보다.
사실 이 질문을 하면 안 되지 않나 망설였지만 이왕 물어본 거 끝까지 여쭤보기로 했다. '엄마, 왜 제정신일 때는 나한테 그렇게 잘해줘 놓고 아마 후회도 했을 텐데 왜 또 때린 거야?' 엄마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보다는 정말로 궁금했다. 살면서 누군가를 그렇게 심하게 때려본 적이 없다. 그것도 내게 소중한 누군가를. 수년간 자기보다 작은 아이를 반복적으로 때리는 심리는 무엇일까. 어떤 마음에, 어떤 효용이 있어서 그렇게 매를 휘두른 걸까.
한참 동안은 생각을 말씀하셨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서 몸에 밴 게 아닐까 추측하셨다. 또, 나한테 욕심이 유독 많으셔서 그랬을까, 하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사실 때리면서도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바탕 폭력이 지나고 나면 내가 그렇게 불쌍했다고 한다. 더 궁금했다. 그런데도 왜 나를 때리고 또 후회하고 또 때렸어?
엄마는 정말 대답을 해주고 싶어 하셨다. 곰곰이 생각을 하시고 우시기도 하셨다. 왜냐면 내가 엄마를 미워하지 않고 내 상처를 잘 다독이고 싶다고 얘기해서였다. 그게 내게 도움이 된다면 자기가 과거에 한 아픈 일도 돌아보신다. 피하지 않으신다. 그러다 내가 조금 감이 왔다. '혹시 화가 많이 났을 때 나를 때리면 기분이 풀렸어?' 엄마가 더듬거리며 아마 화가 너무 솟구치면 미치는 상태가 되고 그럴 때는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화가 컨트롤 범위를 벗어나면 그걸 풀고자 나를 때린 것 같았다.
알게 된 후의 마음은 덤덤했다. 다행히 내가 맞은 효용이 있었구나, 싶었다. 내가 아팠던 만큼 엄마는 미칠 것 같은 화가 풀렸다는 거 아닌가. 내가 그렇게 맞은 공덕이 있구나, 싶어 조금 마음이 기쁘기까지 했다. (엄마의 행동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서 말이다)
추측건대 사람에겐 악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내 악한 부분을 잘 보지 않으려고 해서 다른 마음에 비해선 거의 못 살피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내게도 누군가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성공하면 조금의 쾌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외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환자셨고 결국 간에 출혈이 있으셔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내게 알코올 중독은 꽤나 비중 있는 증상으로 여겨진다. 그것 때문에 엄마는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외할머니는 우울증이 돌아가실 때까지 있으셨고, 나는 그런 엄마로 인해 고통을 대물림 받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폭력은 알코올 중독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중독된 사람은 행복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다. 괴롭기 때문에 술을 찾고, 마시고 나서 후회를 하지만 또 괴로워 찾게 된다. 폭력도 중독성이 있는 거 아닐까. 인간의 잔혹함은 더 큰 잔인함을 불러오는 성격이 있는 것 아닐까, 엄마를 이해해 봤다.
지금 나는 엄마도 나도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글을 적으면 아마 엄마는 보고 우실 것 같다. 그렇지만 엄마가 그 죄책감에 머무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건 나와 동생에게 우선 좋지도 않은 상태일뿐더러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글을 쓴다. 엄마도 내게 아까 약속했던 비싼 가방 두 개를 사주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시면 좋겠다. 내 상처는 이제 나의 것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