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중증 우울 스펙트럼으로 휴직계를 냈다. 휴직계를 내는 과정은 사실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눈치를 많이 보는 마음의 버릇이 있어서다. 주변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건강이 안 좋으면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휴직 던지는 거라고 응원해 줬지만 내 마음은 한동안 정말 무거웠다. 나를 믿고 칭찬해 주고 회사생활 어떻게 하는 거라고 알려주시던 상사에게 내 상태를 이야기하기가 힘들었다. 퇴근 시간 2분 전에 달려가서 보고를 했다. 그건 그냥 일단 지르고 보자, 하는 마음이었지 내부에서 어떤 정리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기대를 받을 때 그걸 벗어던지는 게 힘들다. 아니, 애초에 기대받지 않아도 혼자서 '잘'하려고 애를 쓴다. 남 눈에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자주 내 마음과 생각은 저리 치워놓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짧은 지식이지만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며 좋아하는 학자가 생겼는데 '칼 로저스(Carl Rogers)'라는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성장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중요한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이 특정한 행동을 할 때에만 소중하게 인정받는다는 '가치의 조건'을 습득하게 된다. 부모나 교사는 조건부의 존중과 애정을 주기 때문에 아동은 긍정적 존중을 받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 가치와 기준을 받아들여 내면화한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보다 긍정적 존중을 받기 위한 가치의 조건을 중요하게 여기며 추구하게 된다.
로저스에 따르면 온전히 기능하는 사람은 자기 신뢰를 지니며 외부의 가치나 권위적 타인의 영향을 덜 받는다. 만약 자신이 소망하고 경험하는 것들과 자기 존중감을 위해 추구하는 것들 간에 불일치가 생겨 자신의 경험을 자기로 통합하지 못할 때, 심리적 부적응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다. 개인의 모든 경험이 무조건적으로 긍정적 존중을 얻는다면 가치의 조건이 줄어들고 이를 통해 자기 존중감이 증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치료자는 이전에 부모가 제공했던 조건적이고 가치평가적인 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제공해야 한다. 바로 내담자에게 진실한 태도로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과 공감적 이해를 해주는 것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개인 상담을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내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실 나는 이직을 꿈꾸고 있었는데 로스쿨에 가고 싶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고향에 있는 로스쿨에 입학해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었고, 두 번째는 변호사가 되면 조금 더 체면이 살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상담이 진행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심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턴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늘 무언가를 못해낸다는 생각을 갖고 나 자신을 바라봤던 것 같다. 3년 행자생활을 (해냈지만) 잘 하진 못했다, 친구들만큼 멋진 직업을 얻지 못했다, 휴직을 하지 않을 만큼 강하지 못했다 등등. 그런 내게 상담은 오히려 내가 심한 우울 속에서도 약속한 3년을 행자로서 채운 절제력 있는 사람이고,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나아지려고 하는 강한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려줬다.
아마 나는 무언가를 해냈을 때 즉, 성취를 해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왔던 것 같다. 마킹 실수로 100점이었던 점수가 88점으로 내려갔을 때 혼이 났다. 발표를 잘했을 때, 1등을 했을 때, 좋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그래서 내 마지막 관문을 변호사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아직 갈 길이 멀었을 것 같다. 여전히 상사 눈치를 보고 조직의 암묵적 룰은 갑갑하게 느껴진다. 남이 날 어떻게 보든 그건 남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무의식은 여전히 많이 얽매여있다.
상담사님이 내게 해주는 것처럼 내가 내게 더 친절하고 따뜻하고 수용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