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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May 02. 2024

덕심의 연착륙을 바라며

최근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조금 호감 있던 분과 카페를 가게 됐는데 몽글몽글 맺혀있던 마음이 숑, 하고 사그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묘해서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렇다고 호감이 없어졌다는 건 아니다. 그냥 내 머릿속에 있던 어떤 환상이 사라지고 조금은 다르면서 낯선 누군가가 내 앞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달까. 


누군가를 좋아할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요즘 그런 의문이 많이 든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 중에서 '우리가 남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사실 나의 다른 모습이고, 내 이해의 지평 너머에 있는 것이 비로소 타자.'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상대방이 상냥하고 배려심이 있어서 좋은 마음이 들었다면 과연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의 품성은 그의 것일까, 아니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내가 다소 호감이 있었던 분에 대한 감정은 그분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내 안에 있었다. 그 사람이 내 옆에 없는 것이 내게 익숙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내 소회는 사실 그와 분리되어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 그 분과 같이 있게 되었을 때, 실제로 다가온 느낌은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느낀 것과는 달랐다. 좀 더 구체적이었고 더 잔잔했고 더 덤덤했다. 그렇게 내 안의 어떤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느낌이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것으로 교체됐다. 이상하면서 조금 아쉽기도 한 기분이었다. 


사람을 좋아할 때 드는 감정이나 생각의 흐름에 관심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그건 내가 3월 중순부터 거의 덕질을 하다시피 해온 어떤 분에 대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헷갈릴 수 있는데 내가 덕질하는 분과 위에서 말했던 조금 호감 있는 분은 다른 사람이다...ㅎㅎ;) 덕질하는 감정은 한층 더 강렬하다. 많은 것을 그 사람으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하고 또 실제로 인생의 방향이 조금 바뀌기도 한다. 그 사람이 하는 작은 제스처나 단어에도 다소 열광적으로 반응을 하게 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닮고 싶어 한다. 호감이 스쳐가는 바람 같은 마음이라면 덕질은 그것보다는 지속적이고 더 깊은 자국을 남기는 것 같다.


호감이 모호하게 흔들리다 연기처럼 사라지고 다시 실체로 다시 마음에 자리 잡았던 순간이 꽤 인상 깊었다. 왜냐면 내 덕심도 조금은 달라지고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이 마음이 흘러갈지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내 덕심도 사실 오랫동안 대상과 접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내가 키워온 마음이다. 대상과 그를 향한 마음이 분리된 지 시간이 꽤나 흘러서인지 요즘은 내가 앓고 있는 상대가 정말 실존하는 사람인지 실감이 안 나기도 한다. 마치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을만한 판국이다.


그 사람의 친절함, 배려심, 선량함, 다정함이 좋다. 그의 생김새도 좋다. 그분의 취약한 점도, 내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들 마저도 좋다. 그것 외에 내가 무엇을 더 고려해야 할까. 내가 그 사람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안경을 끼고 있고 그걸 통해 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내 안의 강력한 감정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그 사람의 존재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로 인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에게 영향받은 감정임은 확실하다. 


들뜬 감정을 스스로 즐기고 있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어쩌면 지금 내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내가 무언가를 하나의 구(球)처럼 매끄럽게 입체적으로 좋아할 수 있다는 환희가 지금 내겐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이 감정으로 인해 삶이 풍성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호기심이 많아졌고 다방면에 많은 관심이 생기고 잔잔한 기쁨이 마음에서 흐른다. 그 사람의 실체가 어떻든, 어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든 지금 내 상태에선 그것마저도 그 사람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구처럼 둥글고 완전한 마음



그렇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는 것이다. 호감 가졌던 분이 낯설게 느껴진 것처럼 실제로 만나면, 또 대화를 나누면, 식사를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낯선 기분을 느끼게 될까? 그게 어쩌면 환상이 벗겨지는 순간일까? 그렇게 되면 조금 혼란스러울 것 같다. 아니면 모든 사랑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호르몬의 장난에서 벗어나 생활의 일부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왜 그런 기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신기한 메커니즘이다. 사랑에 들게 하는 순간엔 어느 정도의 환희와 환상이 찾아온다. 그건 한동안은 상대의 다양한 모습과 어쩌면 내가 견디지 못하는 모습까지도 품을 수 있는 감정 상태를 만들어준다. 그 후에 흔한 말로 콩깍지가 벗겨지면 그때는 그 사람과의 시간이 일상처럼 평범하게 느껴지는 단계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아마 콩깍지가 벗겨진 상태가 정상이고 진짜 그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전부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내게는 누군가에게 반한 시간이 더 달가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어떤 점이든 둥그렇게 모두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깐 말이다. 실제로 만나게 되더라도 나의 덕심이 연착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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