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도를 2번 다녀왔다. 22살에 1달간, 24살에 1년간. 그중 먼저 다녀온 한 달간의 인도에서 나는 내 무의식이 애타게 외치는 소리를 듣는 경험을 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처음 간 인도는 시커맸다. 새해로 바뀌는 새벽에 도착을 해서 뉴델리는 어두웠고 총소리 같은 폭죽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길, 인솔자는 꼭 남자 참가자들이 바깥에 서고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뭉쳐서 가라고 안내했다.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쳐다보는 인도 사람들을 마주치며 어둡고 깜깜했던 길을 두려움 속에서 걸었던 게 인도의 첫 번째 인상이었다. 같은 일행이었던 한 언니는 도착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가 머무른 곳은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지은 학교 부지였다. 대략 50명이 넘는 인원들이 한 달 정도를 함께 지내며 간단한 공사를 돕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때 나는 사람을 피하려 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걸 고치고(?) 싶어서 단체 생활을 해보자고 도전한 활동이었다. 그러니까 당시 나는 많은 사람들과 밤낮으로 붙어있는 게 꽤나 힘이 들었다.
물이 부족한 지역이었다. 우물을 한국 구호단체에서 파줘서 간신히 농사를 짓고 식수를 해결하고 있는 곳이었다. 샤워는커녕 머리를 감는 것도 3일에 한 번씩 가능할 만큼 물을 아껴 써야 했다. 잠을 잘 때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침낭을 깔고 잤는데 겨울이라 공기가 건조했다.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지 않으면 다음날 입술과 코가 죄다 터져있었다. 낮에는 처음 해보는 각종 노동들을 했다. 시멘트 비벼서 길 만들기 등 같은 일이었다. 밤에는 추위에 떨며 온몸이 쿡쿡 쑤시는 가운데 얕은 잠을 설쳤다. 거기다 24시간을 또래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종종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를 보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눈물이 나왔다. 한 번은 이유도 모르게 너무 화가 나서 설거지하던 냄비를 던질 뻔하기도 했다.
법륜스님이 설립한 재단에서 갔던 활동이라 아침, 저녁엔 간단한 예불을 했다. 처음 해보는 종교의식이 어색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108배도 아침마다 하고, 간간히 법륜스님 법문도 들었다. 사실은 다 귀찮았다. 왜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들 하니깐 어쩔 수 없이 따라 했다.
냄비를 집어던지고 싶었던 날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예불 시간에 내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딱 한 문장으로 따옴표 안에 들어가 정리되는 걸 느낀 날이 있었다. "아, 나는 지금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구나!" 인생을 살면서 내 욕구가 그렇게 명쾌하게 정리가 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갑자기 술렁이던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 그랬구나... 내가 이런 충동을 갖고 있어서 그동안 단체생활이 무진장 힘들었구나...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그런 욕구를 갖고 살아간다. 관심이 가는 이성에겐 이뻐 보이고 싶어 한다. 계속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는 걸 늘 뒤늦게 알아차린다. '왜 쳐다볼까? 왜 웃어줄까?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리고 이런 욕구가 좌절될 때 나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때때론 무기력해져 인생을 살아갈 동력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낀다. 최근 좋아한 분에게는 '헤어질 결심'의 서래처럼 죽어서라도 기억에 길이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봤다. 목숨을 걸고 애정을 갈구한다.
절에 있을 때 내 과제는 '남의 손에 목줄을 쥐어 주지 않겠습니다.'였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내 마음의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법륜스님에 따르면 이런 상태는 내 목줄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준 꼴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전에도 글에서 한번 이야기했듯이 나는 귀여움 받는 업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행자생활을 마무리했다.
얼마 전에 또 비슷한 좌절을 했다. 오랜만에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내가 그분을 좋아하는 형태로 그분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소망이 좌절됐다. 그 외에 (죄송하지만) 보험처럼 생각했던 분에게도 다른 분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너무나도 나답게(?) 애정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갈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돌아보며 알게 되자 정말 비참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는 게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화도 많이 났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한 2시간을 괴로워하다가 문득 내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 사람을 원망하는 치졸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자기 개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미워하기보단 그런 욕구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한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부드럽지 않은 말로) 죽일 듯 미워하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되자 화를 낼만 하니까 화가 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화가 나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지 꼭 막아야 할 감정은 아니구나 싶었다.
어렸을 때 화내는 부모님을 보며 많이 생각했다. "어른들이 왜 저렇게 감정적이지?", "어른답지 못하다." 그런 생각을 오래 가져온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을 싫어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좋아한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을 볼 때도 화를 내는 나 자신은 안아주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밖으로 화를 드러내기보단 안으로 삭이는 편인가 보다. 또, 내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니깐 다른 사람들도 화내는 나를 떠날 거란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냥 좋은 게 좋지 하고 표현을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최근엔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화를 내봤다. 생각보단 사람들이 나를 떠나가지 않았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담에서 내담자가 화를 낸다면 좋은 신호라고. 왜냐면 화를 내도 이 상담자가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많이 공감이 갔다. 난 가족에겐 화가 나면 잘 표현을 한다. 왜냐면 우린 늘 서로에게 때론 지나칠 만큼 화를 드러내며 아웅다웅하면서도 또 극복하고 뭉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날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화라는 감정과 화를 내는 표현방식은 별개라고 한다. 화라는 감정은 무조건 수용해줘야 하지만 표현방식은 그렇지 않다. 화가 나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또 내 감정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게 적절히 표현하는 방식을 연습해 나가는 게 필요하겠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란 유아적인 욕구가 자주 올라오는데 경계해서 지켜봐야 할 마음이겠다. 놓치는 순간 화가 나를 덮친다. 화에 매몰되지 않도록 잘 깨어있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