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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Jun 01. 2024

습관 거스르기

엄마와 아부지가 서울에 오셨다. 병원 검사를 위해 올라오셔서 오래는 못 뵀다. 같이 점심을 하러 갔는데 전날부터 피곤했던 나는 오랜만에 철없는 언행을 맘껏 뽐냈다. 부모님께 계속 피곤하다고 찡얼거렸다. 오랜만에 뵌 부모님과 이것저것 많이 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을 온전히 맑은 정신으로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자꾸 엄마 옷에 튀었던 빨간 자국이 떠오른다. 좀 더 세심히 살펴서 엄마 앞치마를 좀 당겨서 다시 묶어드릴 것을.



깨어있기란 얼마나 힘든가. 깨어있어 보자는 명제 자체를 잊고 정신없이 허겁지겁 사는 게 대부분이고 떠올릴 때조차도 '깨어있어야지!' 하는 생각에 매달려 있지 실제 느끼고 체험하는 것에 집중하진 못하는 게 부지기수이다. 





휴직을 하며 주로 많은 시간을 공상에 빠져있음을 알았다. 뭐 하고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을 때때로 받는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게, 내가 그 물처럼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지 그때서야 돌아본다. 주로 과거에 머문다. 또는 어떤 욕망을 테이프 돌리듯 반복 재생한다. 그러면 슬슬 서글퍼진다. 이뤄질 수 없어, 그렇지만 이뤄졌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또 한다. 고장 난 테이프 같은 의식의 흐름이다. 



소파에 포근히 앉아 담요를 덮고 때 지난 예능을 틀어놓고 쉬는데 점점 괴로워지는 데에는 위와 같은 내 사고의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머리는 뿌예지고 무기력한 기분에 갇혀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괴로운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작용은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 벌어진다. 



깨어있으라는 건 반복적으로 사사한 가르침이다. 절에서 내내 깨어있는 게 수행의 전부라는 요지의 말씀을 들어왔고 얼마 전에 뵌 은사 스님께서도 늘 지금처럼 깨어있으라고 하셨다. 그때 내 상태는 머릿속이 조명을 켠 듯 밝았다. 어떤 괴로움도 없었다. 스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듯 그렇게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깨어있는 것, 그건 사실 깨어있을 땐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거기엔 어떤 의지나 노력,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잘 들을 뿐인 것이다. 



망상과 상상,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것에 내 시간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 허탈했다. 총 육 개월의 휴직 기간 중에 지나간 5개월의 시간은 어쩔 수 없고 남은 한 달이라도 좀 주체적으로 시간을 쓰고 싶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대개는 책을 읽고 때로는 영어단어를 외우고 심심하면 영화 관련 유튜브를 보며 용어들을 익힌다.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뿌듯하고 혼자라는 외로움도 덜하다. 특히 책을 볼 때 머리가 상쾌해지는 게 느껴져 참 좋다. 



우리 뇌는 진화에 유리하도록 지나간 보상을 계속 곱씹고 앞으로 닥칠 위협을 두려워하게 기능하도록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과 행복, 감사 등을 얻을 수 있는 '현재'로부터 계속 멀어져 과거와 미래가 필름처럼 흘러가는 일종의 '가상현실'에서 살아간다. 생긴 대로 살다가는 그런 기제가 꿈에서조차 더 강화되어 괴로움에 지배되고 만다. 



가상현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특히 우리 뇌가 계속해서 찾는 보상의 기쁨은 실제로 그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정도보다 부풀려져 있다. 참고 또 참다 결국 욕망에게 져서 기어이 먹게 된 배달음식은 상상 속의 그것보다 덜 맛있곤 한다. 얼마 전엔 호감 있던 분과 차를 마신 적이 있었는데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 머릿속 기대했던 느낌과 현실의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다. 현실의 느낌이 밀려올 때 기대 속 느낌은 썰물처럼 자취를 감췄는데 그 순간이 낯설었다. 자꾸 달달한 것을 찾아 과거를 곱씹고 미래를 기대하는 내가 주지하여 망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불쾌한 일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뱀에게 물린 것과 같고,
즐거운 일에 집착하는 것은 뱀 꼬리를 움켜쥔 것과 같다. 



태국의 명상가 아짠 차의 표현이다. 불쾌한 것은 싫어하고 쾌한 것은 가지려고 하는 우리의 생존 본능은 때가 다를 뿐, 반드시 뱀에게 물리게끔 설계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마냥 편안하고 좋은 것을 선택해선 안 되는 것이겠고 때로는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을 해서 나의 습관을 거슬러가야 하겠다. 



6월부터는 아침에 절을 해보려고 야심 차게 크고 폭신한 절 방석을 마련했다. 과연 몇 시간 뒤에 아침을 맞이한 내가 절을 하고 있을까. ㅎㅎ.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아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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