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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Apr 14. 2024

스님, 저 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나는 3년간 행자 생활을 했다. 흔히 조계종단에서 하는 머리 빡빡 깎는 행자는 아니었다. 법륜스님이 만드신 불교단체에서 수행을 하는 건데, 내가 있을 당시에는 법사나 실무자를 키우는 교육이었다. 대학에서 길을 잃어 단행했던 백일출가에서 나름의 희망을 발견했다. 그래서 3년 정도 더 하면 완전 해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백일출가를 끝내고 집에 돌아갔다가 3일 만에 돌아와야 다시 입재가 가능했다.


사실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시에 내가 부모님에게 대학은 중퇴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눈물로 나를 말리시던 부모님은 그래도 혹시나 돌아올지 모르니 휴학을 해두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덕에 다행히 재입학을 통해 대학을 졸업할 수는 있었다. 그 정도로 당시 나한테는 불교가 큰 의미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두고 떠날 정도로 말이다.


겉은 머리도 남자들만큼 짧고 법복을 입고 다니는 행자 그 자체였다. 그러나 3년간 내 마음은 행자답지는 못했다. 특히 학기마다 짝사랑 상대를 바꾸면서 좋아하는 기록을 세웠다. 백일출가는 짧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변하고 싶은 의지가 절실해서 그랬는지 단 한 번도 이성에게 관심이 간 적이 없었는데, 3년 동안은 괜찮다 싶으면 집적대는 마음이 참 많이 들었다.


주로 걸출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NGO 활동을 힘 있게 잘하는 분, 절에서 오래 일하신 멋진 실무자분, 백일출가를 온 잘생긴 변호사, 또래지만 배울 게 많았던 남자 도반 등등... 어디 한 군데라도 좀 멋있으면 마음이 갔다. 스님도 내게 '행자님은 꼭 괜찮은 남자만 고른다~'하고 인정해 주실 정도의 안목이었다. 행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사실 남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내가 이 사람 좋아했다, 저 사람 좋아했다 하며 털어놓는 걸 도반들과 법사님, 스님이 잘 받아주셨다.



스님, 저 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3학기쯤 됐을 때, 아침 발우공양이 끝나고 나는 스님 뒤를 쪼르르 달려가서 위엣말처럼 보고를 드렸다. 당시 나는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스님은 벙글벙글 웃으셨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또 누구고?' 물어보셨다.


당시에 내 나이가 23살이었으니까 누군가를 자꾸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 않나 지금은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나는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유독 정신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던 실무자분이 나를 참 귀여워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목소리가 좋고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하셨다. 거기다 피아노, 기타를 잘 연주하시고 노래도 참 잘하셨다. 스님 말에 따르면 우리 절에서 안 좋아하는 여자가 없을 정도로, 인기 많은 분이었다. 아마 나를 조카 귀여워하듯 챙겨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귀여움 받는 기분은 내가 가장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크게 집착하는 감정이었다는 것이다.


같이 일을 한 후에 실무자분이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밥을 따로 사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정말 기뻤다. 그런데 내가 우선 한 행동은 해당사항을 스님께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분이 연애 감정으로 연락했을리 없지만 일단 나는 그분을 많이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고사항에 해당했다. 연애는 하는 순간 행자로 남을 수 없는 게 규칙이었다. 한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서 마음속엔 반항을 품고 있어도 언행은 규칙대로 하는 게 내겐 마음 편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나중에는 결국 스님에게 불려 갔다. 내 상태를 손바닥 보듯이 꿰고 계셨다. 자꾸 그 사람이랑 있었던 일을 머릿속으로 곱씹는 건 행자로서 좋지 못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자꾸 그분을 생각하고 설레하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머릿속으로 지나간 일을 반복해서 곱씹고 또 곱씹기 때문이라고 지적해 주셨다. 나는 조금 발끈했다. '저는 그래도 그분 옆에 가거나 말을 걸거나 하지 않는데요...' 내 언행은 계율에 맞기 때문에 그 정도 기쁨은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님은 마음으로 짓는 것도 업식이니 마음도 잘 보고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귀여움을 받을 때 드는 아주 강한 달콤함. 나는 그걸 내려놓지 못하고 결국 3년 행자 생활을 졸업했다.


3년 째에는 절에 계속 남아서 실무자나 법사가 되는 길을 갈지, 아니면 다시 세상으로 나갈지 결정을 해야 한다.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나는 내가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엑소 영상을 찾아보는 걸 보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0시에 불을 끄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새벽예불을 드린다. 대중생활을 하기 때문에 혼자 핸드폰을 할 시간이 10시 이후밖에 없었다. 그때 한창 엑소의 으르렁이란 노래가 유행이었다. 자꾸 이불속에서 엑소 덕질을 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 아침에는 그래도 선배 행자라서 맨 앞에 앉아서 예불을 드리는데 절을 하다 너무 졸려서 엉덩이를 들고 방석에 엎드려 잠을 자기도 했다. (얼마나 내 도반들이 내가 부끄러웠을까...ㅠㅠ)



그때 그 시절, 엑소



사람들에게 절에 4년이나 있었다고 하면 먼저 영영 들어갈 생각이었냐고 내게 묻고 그다음엔 왜 다시 나왔는지 물어본다. 그럴 때 나는 엑소 때문에 나왔다고 대답한다. 멋진 이성을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법사나 실무자가 될 수도 있다. 법사님들도 결혼은 하시기 때문에... 그런데 나는 좀 자유롭게 덕질도 하고 연애도 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출가자가 될 만큼 청빈하고 깨끗한 그릇을 갖고 태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요즘 또 덕질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러니 예전에 내 마음들이 기억이 난다. 그때도 정신을 못 차렸었지... 그때도 지금처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재생산해냈지... 며칠 전에 문득 짝사랑에 괴로워하다 정신이 상쾌해진 때가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괴롭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그동안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의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고 좋아하는 감정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아 좋다,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래서 그 사람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그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곰곰이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괴로움이 시작된다. 또 내가 취약한 것은 내가 귀여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곱씹는 버릇이다. 이럴 때, '나는 그 사람이 좋고, 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건 그 사람 문제다.'라고 정리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늘은 집 청소에 집중을 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생각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는 것 같다. 덕질은 즐겁지만 뭐든지 과하면 힘이 든다. 이 쉬운 원리를 10년이 지나서야 깨친다. 똑똑하다 생각했는데 사실 별로 안 똑똑한 것도 같다. 적당히 하자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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