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간다
웃을 일이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간다
이 문장을 접한 것은 중학교 때이다. 한 친구가 문제에 대한 오답을 말하고, 오답을 들은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절반이라도 간다'는 문장을 듣고 아이들은 웃었다. 물론 나도 웃었다. 이후로 그 친구는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웃을 일이었나?
학생들의 석차는 철저히 정답과 오답으로 나눠졌다. 이분법적인 시스템에서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간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사건 이후로 정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딱 절반의 석차를 유지했다. 기억나는 것은 127/279.
중간의 성적. 교우관계에서도 중간이었다. 불화가 있단 두 무리에서도 중간, 개개인의 불화가 있던 단일 무리에서도 중간이었다. 불화를 싫어하는 줄 알았던 나는 사실은 각각의 상황들에 순응했던 것이다.
한 번도 중간 입장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최근까지만 해도 중간을 고수하는 것이 현명한 줄 알았다. 의견을 피력해 혹시라도 불화가 생긴다면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느꼈다.
자기신뢰를 다시 읽다 문득 돌이켜보니, 내 과거는 단순히 '순응'했던 것이다. 그토록 싫어했던 단어를 삶에 적용시키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전혀 웃기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