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오는 친구
'죽음에 관하여' 웹툰이 있다.
신과 여러 사람들이 나오며 각각의 죽음에 대한 스토리를 그려놓은 웹툰이다. 웹툰을 본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는 동일하다. 바로 평점. 네이버 웹툰의 한 획을 그은 이 웹툰의 평점은 10점 만점 중 10점이다. 자칫 비난받기 쉬운 제목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두가 공감했다는 것을 평점으로 증명하고 있다.
처음 생각해본 것은 초등학교 때.
초등학교 때 잠이 안 오는 날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결국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됐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다. 어릴 때부터 이 주제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었고 이미 다 커버린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잊을만하면 오는 친구가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모든 생각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어떤 생각이든 깊어지면 죽음으로 귀결된다. 여자친구에 대한 고민이나 직업에 대한 고민 등 어떤 고민이나 생각도 깊어지면 '죽음'이란 단어와 연관된다. 그렇기에 생각이 많은 사람은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지니게 된다. 굉장히 자연스럽게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건 누구나 아는 명제이다. 마치 데카르트의 '난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사람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이 생각의 빈도가 잦아질수록, 깊어질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태어난 이상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 또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시험지에서 1가지 문항만 놓고 정답을 찾아보라고 하는 것처럼 죽음이란 것은 인생의 끝임을 누구나 안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이유가 있다.
현재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죽는다. 글 쓰고 있는 나도 죽을 것이다. 옆집 사람도 죽을 것이며 윗집 사람도 죽을 것이다. 모두가 죽을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답을 알기 때문에 '난 그냥저냥 살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끝나는 기간은 모르지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기에 과정이 무의미해 보일 수 있다.
무의미한 것은 없다.
이 또한 관측자가 있다면 명제다. '어차피 죽을 것이기에 내 삶은 무의미하다' 생각해보자. 친구가 보는 내 삶이 무의미할까? SNS에서 보는 내 프로필이 무의미할까? 어떤 이는 내 삶을 보며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혹은 '저렇게 살아야지'와 같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내 프로필 또한 마케팅적인 관점으로 볼 수도 있고 단순히 지나가는 1인처럼 볼 수도 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도 '이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 혹은 '나와 생각이 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각각의 의미를 지니며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내 삶도 의미가 있단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었다.
잡스는 태어났기에 죽었다. 이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잡스의 스토리는 살아있다. 매킨토시를 만들던 때의 이야기, 회사에서 쫓겨난 이야기, 다시 회사로 돌아와 지금의 애플을 만들기까지의 스토리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여전히 살아있는 잡스의 스토리를 듣고서 잡스가 무의미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유명한 이도 결국 죽었지만, 스토리는 살아있으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세상은 저마다의 결이 있다.
다시 죽음에 관하여 웹툰을 보자. 저마다의 스토리로 끝이라는 죽음을 맞는다. 동일한 스토리를 지닌 사람도 없으며 똑같은 죽음을 경험한 사람도 없다. 예를 들어, 자연사로 죽은 A와 B가 있다. A와 B는 자연사로 죽었다는 것은 똑같지만, 살아온 그 자체의 스토리는 다르다. 결국 시작과 끝은 같다. 태어났고 죽었다. 하지만 그 스토리(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의 삶은 그만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들이 하나의 결이 되어 세상을 구성한다.
어떤 스토리를 쓸 것인가?
어떤 웹툰이나 끝이 있단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연재하는 중엔 끝은 중요하지 않다. 꾸준히 연재하고 있는 지금이 중요할 뿐. 내 삶이 시작됐다. 그리고 결국 죽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시작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연재 중이라는 사실이다. 나도 연재 중이고 글을 보는 당신도 꾸준히 연재 중인 상태이다. 옆집도 윗집도 다 같이 연재하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지금 집중할 것은 단 1가지, 어떤 스토리를 쓸 것인가?이다.
죽음은 완결과 같다.
시니x혀노가 탄생시킨 죽음에 관하여라는 웹툰은 완결됐다. 웹툰도 사람처럼 태어났기에 죽은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스토리는 아직까지도 살아있다. 많은 이들이 명작으로 평할 뿐만 아니라, 웹툰의 스토리는 아직까지도 산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결국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완결이 아니라 스토리이다. 그리고 내 스토리를 기반으로 내 세상이 구성된다.
포스트 데스란 없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단어는 "코로나"다. 이를 두고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 경제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이다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인류에 있어서 흑사병이나 코로나 같은 전염병은 반드시 대비해야 하는 것이 맞다. 대비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종말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포스트 데스란 것은 없다. 인류든 전염병이든 세상이든 내가 죽는다면 끝이다. 반드시 정해진 끝.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현생의 코로나 시점. 지금 현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