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 전 일이다.
2017년 중순쯤 나를 공부하는 학교(인큐)에 다녔다. 당시 군인이었는데 모아둔 휴가 + 말년 휴가로 인큐에 나갔었다. 할 일 없던 군대에서 우연히 인큐 윤소정 대표님 책(인문학 습관)을 접했고 이 분을 꼭 만나야겠단 결심한 후였다.
고대하던 인큐에서의 경험은 굉장했다. 분장한 선생님들의 역할극과 공연, 좁은 방 안에서 펼쳐지는 숨 막히는 심리게임, 취약한 부분 중 하나인 부족한 자신감에 대한 솔루션으로 주어지는 여러 가지 미션 등 다양한 경험들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미션은 사람 많은 길목에서 할 수 있다! 삼창 하는 영상 인증 미션이 있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다 보니 '어떡하지 어떡하지'하며 6시간을 돌아다녔다. 10분만 투자해 퍼뜩하면 끝나는 미션을 고민하며 망설이다 보니 6시간이나 흐른 것이다.
도저히 혼자 할 용기가 나지 않아 '함께 할 사람 없을까?' 생각하며 멈춘 곳은 경찰서였다. 다리도 아파오고 오늘 내로 끝내야 하는데.. 생각하던 중 갑자기 경찰서가 보이니 '도와달라고 할까' 고민했다. 이 방법 또한 들어갈까 말까 1시간 동안 서성이다 다시 발길을 돌렸다.
어느새 해는 지고 있었다. 나올 때는 해가 중천이었는데.. 신림 스타벅스 앞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며 '아.. 도저히 못하겠는데..' 멍 때리고 있었다. 난 왜 이렇게 소심할까.. 낙담하던 그때 익숙한 무리가 내게 다가왔다.
"혹시 설문조사 가능하신가요?"
신림에 자주 출몰하는 사이비(신천지였나)였다. 20대 같은 남자 1명과 여자 1명. 날아온 질문을 듣고 뇌에선 강렬한 스파크가 발생했다. 정말 기발한 생각,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설문조사할 수 있는데 대신 제 부탁부터 들어주세요. 학원 숙제인데 사람 북적이는 길목에서 할 수 있다 삼창 외치고 영상 인증하기거든요"
그런 눈빛은 처음 봤다. 아마 그 사람들은 많이 봤겠지만 난 처음이었다. 이상한 사람을 보는 그 의심의 눈초리였다.
"학원에서 그런 숙제를 왜..?"
여차여차 설명을 했다.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부터 오늘 몇 시간 동안 돌아다녔는지, 인증 기한이 오늘까지인데 사람 한 명 살리는 셈 치고 같이 하자고, 인증하는 것 외에 다른 곳에 영상 나갈 일 없다고. 감성을 파는 이런 설득 경험 또한 처음이었다.
다행히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그 분들은 들고 있던 설문지와 펜을 스벅 옆 의자에 내려뒀다. 그리고 핸드폰을 높이 들고 셀카 영상을 켰다. 초점이 비치는 곳엔 익숙하지 않은 조합(주인1, 남자1, 여자1)이 있었고 우리는 주먹 쥔 손에 반동을 줬다. 선창은 내가 하고 후창을 따라 하는 식이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영상을 찍은 후 약속한 설문조사를 했다. 도형을 그리고 있는데 역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조상님이 보인다고 하셔서 도형만 후딱 그리고 설문지를 드렸다. "아..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여튼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기분 좋게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