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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한스펀지 Jun 24. 2020

엎지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내 이미지는 여태까지 쌓아온 리뷰의 평점이다.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실수든 고의든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의도와 상관없이 엎질러졌다면 주워 담기 어렵다. 물뿐만 아니라, 주스나 술이 될 수도 있고 액체 상태의 것은 쏟아버리면 다시 주워 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고체도 떨어뜨려 부서진다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우린 윌 스미스가 아니다.

엎지른 물처럼 내뱉은 말도 똑같은 특성을 지닌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무심코 내뱉든 의도해서 내뱉든 입에서 나온 말이란 것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다. 다른 대안으론 들은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도 있다. 후자의 방법은 윌 스미스가 필요하다.







치킨집에 분노하는 메커니즘



출출한 야밤, 배달의 민족을 들어가 치킨 주문을 한다. 배달 예상시간은 40분이다. 치킨의 바삭하며 촉촉한 맛이 떠오른다. 그래, 까짓꺼. 그 맛을 즐기려면 40분 정도는 기다려줘야지.


시간을 보니 35분이 지났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치느님을 영접할 수 있단 생각에 설렌다. 유튜브 영상에서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사람이 뭐라고 하든 내 시선은 시간에 꽂히고 있다.


40분이 되었다. 울리지 않는 초인종과 침묵의 현관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간을 본다. 41분이 되었다. 1분이 지나버렸다. 그래. 5분 정도는 참을 수 있지. 피치 못할 사정이란 건 누구에게나 있으니.


50분이 지났다. 10분간 배달하시는 분이 사고가 났지 않을까, 주문이 정상적으로 들어갔을까, 치킨집이 폭발했나 등 다양한 생각을 하며 인내했다. 하지만 50분이 지난 지금 다가오는 감정은 분노다.


55분이 됐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치킨집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어본다. 돌아오는 답변은 "출발했어요." 이미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고 참을 수 없는 화려한 분노가 감싼다.






그럴 수 있지만, 치킨은 그럴 수 없어.

치킨집에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치킨을 시켰기 때문이 아닌, 배달 예상시간이 넘었기 때문이다. 배달 예상시간이란 우리에게 설렘과 기대, 몹시흥분을 가져다준다. 내 감정이 이처럼 처절하게 짓밟힌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치킨집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가져온다.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

치킨집의 배달 예상시간은 우리의 입에서 내뱉은 말과 같다. 그럴 의도였든 아니든 간에 무심코 내뱉은 말은 상대에게 몹시흥분을 가져다줄 수 있다. 무심코 내뱉었기에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들은 상대는 몹시흥분을 경험한 상태이며 결과적으로 나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말이 중요하다 = 우리 모두가 치킨집이다.

내뱉은 말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신뢰도 하락, 그리고 낮은 별점의 리뷰이다. 이 리뷰 하나하나가 모여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인식이 만들어진다. 현재 다양한 사람들이 보는 내 이미지는 여태까지 쌓아온 리뷰의 평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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