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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한스펀지 Aug 12. 2020

2013년 초, 세상이 무너진 일이 있었다


스트레스에 무디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내 일이 아닌 것에 관심이 없다.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잠시 귀 기울일 뿐, 누구의 편을 들거나 상대를 깐다는 등 굳이 개입하지 않는다. 누가 분명히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내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 아니다.


그중에도 스트레스였던 3사람이 있다. 이 3사람은 각각의 다른 사건으로 작지 않은 스트레스와 회의감을 안겨주었다. 지금은 이 사건들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인사이트들로 가끔은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첫 번째 고마운 사건.






1. 오래된 친구, 였던 아이


같은 초등학교를 나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던 친구가 있다. 20살이 되던 해 한 날의 술 버릇으로 인해 의절되버렸다. 한창 술독에 빠져있었던 시기였으며 20살의 패기로 인해 동트기 전 새벽까지 달리고 있었다.


오후 9시에 시작한 술자리는 무려 새벽 6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내 의식은 이미 새벽 5시에 끊긴 상태였다. 당시 의식 없는 폭주기관차 상태일 때 하던 습관이 [나 술 좀 깨워줘]였다. 술 깨려고 토마토를 하기도 하고 그것도 안 먹힐 경우, 옆 친구에게 싸대기를 때려달라고 했다. (그런 성향은 아니다/진짜) 단지 씨게 한 대 맞으면 술이 술술 깰 줄 알았다.


함께 취해있던 친구에게 여느 때처럼 싸대기를 때려달라고 했다. 날라왔다. 그리고 턱이 부러졌다. ㅎ.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만 마셔" "나 안 취했어" 술자리 만취객의 흔한 대화가 오갔고 의식 흐름이 중단된 우린 어느새 감정이 격앙됐다. 잠시 분위기를 바꿔보자며 담배 한 대 피러나간 상황에 "싸대기 한 대만 때려줘, 그럼 술 깰 것 같아"를 시전했고 그 친구는 주먹을 풀스윙으로 휘둘렀다. 부웅.


이후 자세한 상황은 기억이 안 난다. 한 대 씨게 맞고 술집 턱에 앉아 침을 뱉었는데 색이 붉었다. 턱이 부러지니 피투성이 침이 나오더라. 의식이 없는 중에도 '???' 매우 이상함을 감지했고 친구들과 함께 택시 타고 응급실로 갔다. 엑스레이 결과는 [하악관 골절]이었다. 아침 7시 갑작스런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달려오셨다.


자초지종을 묻는 부모님께 처음엔 계단에서 굴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상함을 감지한 후 깊게 접근하기 시작했고 사실대로 말했다. 싸대기를 날려준 친구에게 "괜찮다고 사실대로 말해도 큰 상황으로 번지지 않을 것이다" 안심시켰지만 역시나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역시는 역시.


부모님이 그 친구를 고소했다. 당사자는 '나'였지만 내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어른들'끼리 해결할 문제라 했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의 무수히 많은 언쟁을 나눴지만 이는 작은 스트레스에 불과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준 것은 [그 친구의 처신]이었다. 좁은 동네에 자라 함께 아는 친구들이 많았고 어느새 그 친구들에게 내 이미지는 바닥을 쳤다. 그 친구는 어떻게든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었고 그 결과 많은 탄원서?를 받았다고 한다. 사건 진행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내 의사는 부모님과 그 친구, 그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고 홀로 부서졌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함께 아는 친구들의 연락]이었다.


2013년 1~2월, 인생에서 가장 많은 전화를 받은 기간이었다. 사건을 들은 친구들은 이미 색안경을 낀 경우도 많았고 중립 기어를 박고 있던 친구들도 자초지종을 들으려 연락을 취했다. 처음 한두 번이야 '그래.. 소문이 났겠지' 했지만, 그 친구가 전파 중인 말이 매우 과장됨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땐 이미 내 이미지가 바닥을 기고 있었고 여전히 전화기는 울렸다.


당시 상태 메시지는 "물어볼 거면 카톡, 전화 모두 하지 마"였고 대부분의 연락을 거절했다. 친구들의 연락으로 극도의 예민함을 겪은 난 부모님께 고소 취하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말했었다. 이 사건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길 바라는 심정으로 처음으로 낯선 단어를 뱉은 날이었다. 그만큼 많은 스트레스를 단기간에 받았었다.


결과적으로 200인가 300에 합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단지 그 돈을 받으려고 2달 동안 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이 아직까지도 분하긴 하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면 그보다 몇 배는 썼을 텐데.






되돌아보면 각자의 상황이 나름 이해가 된다.


'내 아들에게 이런 짓을?'이란 부모님. 내 아이의 일이었다면 나도 비슷했을 것 같긴 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아이의 의사에 더 많은 비중을 둘 듯하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감정으로 밀어붙인 사건이 자식인 내겐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진짜 ㅈ 되지 않을까'란 심정의 그 친구. 나 같아도 그 ㅈ 될 것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행동이든 했을 것 같다. 한때 원망했던 존재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사건이 종결된 지금, 단지 너가 잘 되길 바랄 뿐이다. 진심으로.


원인은 '나'임을 안다.

새벽까지 술을 들이킨 것도 나요, 싸대기를 날려달라고 말한 것도 나다.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한 것도 나이며 굳이 다른 친구들을 내 편으로 만들지 않은 것도 나다. 모든 것의 원인은 나이고 그 결과인 지금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별것이 없다. 단지 일기장일 뿐.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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